7)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열전 - 순교자 저스틴과 그의 저서(AD 160년 경)
- 작성자 : Henry Park
- 21-07-05 17:29
7. 순교자 저스틴과 그의 사상 (AD 165 경)
저스틴(c.100-c.165)은 사마리아에 있던 고대 세겜 땅에서 태어났다. 그는 2세기에 가장 중요한 변증가였다. 아니,
최초의 기독교 변증가인 셈이다.
그는 기독교의 우월성(철학자들에 대하여)과 무해성(정치가들에 대하여)을 주장했다. 한편 그는 기독교와 이방 철학
(특히 플라톤주의) 사이에 가교를 놓으려고 시도했던 최초의 기독교 저술가였다. 그가 한번은 순교 당하는 광경을
목도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그의 회심의 계기 중 하나였다 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기독교로 회심하기 이전의 저스틴의 삶은 진리를 추구하는 여정으로 일관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스토아 주의(Stoicism), 소요 학파(Peripateticism), 피타고라스 학파(Pythagoreanism), 그리고 플라톤 주의(Platonism)를
섭렵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느 철학학파들에서도 신의 존재와 삶의 목적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진리에의 추구가 그를 기독교로 인도했는데, 이 기독교가 ‘참된 철학’임을 발견했다고 그는 후에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는 드디어 자신이 ‘철학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후에 그는 철학자들이 입는 외투(pallium- 로마 천주교 사제가
걸치는 가운과 전혀 별개의 모양으로, 요즈음 석사 가운과 비슷하다)를 걸치고 순회 설교자가 되어 돌아다니면서
기독교 진리를 강론했다.
개종한 저스틴은 복음 전도자로서 기회 있는 대로 복음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철학임을 주장하고 전했다. 그리고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알렸다. 여러 곳으로 여행을 하던 중 에베소에 거하기도 했고, 상당한 기간 동안 로마에
거주하기도 했다. 로마에 거하면서 아마도 기독교 교사직을 감당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그곳에 거하면서 견유 학파
(Cynics)가 그에 대해 음모를 꾸며 검거되었다. 이에 대해 저스틴은 순교로 자신의 진실성을 증명했다. 165년 그는
참수형을 당해 순교를 하게 이른다.
저스틴의 삶보다도 더 유명한 것은 그가 쓴 작품들에게서 나온다. 언제 어디서 자신의 작품들을 썼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로마제국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시기에 살면서 작품을 썼다고 믿어진다. 그리고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순교를 당했다고 믿어진다.
먼저 저스틴을 순교하게 한 견유 학파(犬儒學派)-키니코 학파에 대해서 잠시 설명하고자 한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추종자였던 안티스테네스(약 445-365 B.C.)가 세운 학파로서 견유 학파는 자연에 따라 사는
것이 곧 덕스러운 삶이라고 보며 덕행을 행하게 되면 행복을 얻게 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기존의 가치관, 즉
부귀영화와 사회적 신분과 같은 가치관을 포기했다. 그런 가치관은 자연과 위배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견유 학파는
그렇게 잘 조직적인 철학 학파는 아니었다. 철학 체제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삶의 한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은 줄
모르겠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추구하는 점이 동양 철학 도가의 노장 사상과도 비슷하다. 아무튼 그들의 많은
사상들은 스토아 철학 (Stoicism), 즉 금욕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견유철학의 영향을 입은 스토아 철학은 무엇인가?”
일종의 윤리 철학으로서 이들은 윤리를 나무의 열매처럼 표현했다. 삶은 우주의 은택과 질서를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삶의 결과는 영적 평안과 부귀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영혼의 행복은 신성을 닮아 가는데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처럼 자선적이고, 자발적이고, 그리고 한결 같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되기
위해 언제든 덕행을 쌓아야 한다고 믿었다. 최고의 덕행은 행위가 아니라 선과 악을 구별하는 지성이며,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것을 어떻게 나눠줄 것을 아는 공의이며, 자제심이라 강조한다.
저스틴의 작품들은 2세기에 쓰인 것으로 기독교인들을 위한 변증서로 유명하다. 이 저서들은변증서 1
(First Apology)와 변증서 2(Second Apology)로 나눠진다. 글쓴 순서로는 아마도 트리포와의 대화가 우선일게다.
변증서 1은 로마제국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 그의 아들들 루키우스와 마르쿠스 아렐리우스, 그리고 로마
원로원들과 로마인들에게 보낸 저서들로 기독교에 대한 부당한 핍박에 대해 항의했다.
변증서 1의 구성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는 것이 불공정한 것임을 철학자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변증한 내용이다.
기독교인들은 참된 철학을 가진 자라고 했다. 1-12장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증거들을 제시한 후, 13장부터
긍정적인 증거들을 설명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 즉 모든 만물의 창조자를 경배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올바른 도덕성을 가지도록 했고,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강조한다. 그리고 61-67장에서 기독교인들의 매일의
삶들을, 즉 세례, 성찬, 그리고 주일예배 등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만 가지고 처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방 밀의 종교들 및 이방 철학
(플라톤 주의)과 기독교 사이에 형식적인 유사성이 있다고 보았다.
두 번째 책인 변증서 2는 로마 원로원들에게 보낸 저서이다. 결국 이 두 저서들은 로마인들의 핍박에 대한 변증서란
말이다. 이 저서는 당시의 이교도들과 기독교인들 간에 있었던 관계들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우리들에게 전해 준다.
저스틴의 저서들 중 변증서 2는 부록으로서 핍박 아래 살았던 기독교인들의 삶을 강조하면서 인내할 것을 권한다.
저스틴은 변증서 2에서 계속하여 기독교인들에 대한 당국의 잔인한 핍박에 항의하고, 기독교에 대한 이방인들의
오해(죽음의 유희를 즐기는 자들이라는 비난 등)에 대해 해명했다.
그 외 그의 저서는 트리포와의 대화(The Dialogue with Trypho)이다. 유대인 트리포와의 대화는 유대인들을 향한
기독교 변증서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이 책에서 그는 유대인 트리포에게 구약성경에 나타난 메시아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트리포와의 대화는 서론에 이어 10-30장에서 기독교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법임을 설명한다. 31-108장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심을 성경에서 증명하고 있다. 결론적인 부분인 109-142장에서 기독교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임을 설명하고 있다.
그 외 저스틴의 작품들은 아쉽게도 소실되었다. ‘헬라인들에게 주는 글’ ‘헬라인들에게 주는 권면’ ‘하나님의 유일한
통치에 대해’ ‘디오그네투스 서신’ ‘부활에 관한 여러 말씀들’ ‘여러 파편들’ ‘참된 신앙 해설’ ‘정통을 위한 답변’
‘이방인들에게 묻는 기독교 질문들’ ‘기독교인들에게 묻는 이방인들의 질문들’ ‘제나스와 세레누스 서신’
‘아리스토텔레스 어떤 교리들에 대한 논박’ 등이다.
저스틴의 변증서들은 이후의 변증가들 곧, 아테나고라스(Athenagoras), 테오필루스 (Theophilus), 터툴리안(Tertullian), 펠릭스(Minucius Felix)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편 그가 살던 2세기는 핍박기였을 뿐만 아니라 이단들이 준동하던 때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이단들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이단에 대한 그의 자세는 영지주의(Gnosticism), 군주신론 (Monarchianism), 그리고 오리겐주의
(Origenism)를 공격했던 헤게시푸스(Hegesippus), 이레니우스(Irenaeus), 히폴리투스(Hippolytus), 그리고
에피파니우스(Epiphanius)에게로 이어진다.
시대의 산물인 핍박은 교회를 정화시킬 수는 있었으나, 교회를 뿌리 뽑지는 못했다. 핍박은 오히려 기독교가 이방
사상(paganism)보다 우월함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저스틴은 기독교인들이 핍박당하는 광경을 보고
회심했으며, 핍박을 계기로 삼아 기독교를 변증했던 것이다. 순교 당했던 그였지만, 그는 끊임없이 철학과 기독교
사이에 유사성을 규명해보려고 노력했다.
아쉽게도 저스틴의 저서들은 한글로 아직 번역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건강상 여건이 허락되면 한글로 번역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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