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주요 사건 열전 - 초기의 이단들(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초기 이단들)
- 작성자 : Henry Park
- 21-08-24 12:05
10-5) 후대의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분파들
위에서 언급한 학파들 외의 다른 영지주의 학파들과 관련 종교 운동들을 연대순으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시몬 마구스(Simon Magus)
일반적으로 시몬 마구스를 유대적 영지주의 창시자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8:9-13에 나오는 시몬 마구스가 유대적
영지주의 창시자라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가 설명하고 있다.
시몬 마구스는 로마 황제 클라디우스 시대 사마리아 지타(Gitta) 출신으로 아주 유명한 마술사였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속여 자기를 인간 형태의 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은 신으로 경배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몬은 또 죽은 후 3일
안에 자기가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무덤을 파헤치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형태로
성육신되었다고 가르쳤다. 즉 자기가 바로 유대인들의 메시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실제로는 하나님이지만
외형으로만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며 십자가에 못 박힘과 죽음도 단순히 외형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가르쳤는데
이것이 후에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게 되는 가현설(docetism)로 발전한 것이다.
자신을 신격화한 이런 시몬 마구스의 가르침은 그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메난더(Menander)에 의해 더 발전적으로
나타났다. 메난더는 사마리아인으로 카파레티아(Capparetia) 출신이었다. 주로 안디옥에서 활동했으며 스스로 불가시적
능력을 받은 구세주라고 천명했다. 이 같은 시몬 마구스의 사상은 후에 등장하게 되는 영지주의 이단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 이교도와 근동으로부터 나온 주제들과 성경적 사상들을 섞은 혼합 주의적 현상
– 본질상 순수한 영적 성부와 구별되어 소망 없는 물질세계로 보는 이원론적 해석
– 인격적 구세주가 세상에 임하셨다는 가르침
– 유대인의 성경을 거짓되고 사악한 것이라고 거부 – 비밀스러운 지식만이 아니라 마술에 대한 관심
(2) 케린투스(Cerinthus)
케린투스(Cerinthus: AD 100년)는 영지주의의 요소들을 가진 한 이단 학파의 창시자였다. 그리스도를 인간 예수와는
별개인 천상의 영으로 보았으며 데미우르고스를 물질 세상을 창조한 존재라고 한 점은 영지주의자들과 견해를 같이 한
부분이다. 반면 그가 유대교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 것과 데미우르고스는 하급의 존재가 아니라 신성한 지존의
존재라고 한 것은 영지주의자들과 견해를 달리한 부분이다. 케린투스는 또한 재림에 대해서도 가르쳤다. 케린투스는 자신의
그노시스(gnosis)는 예수님의 사도들 중 한 명에게서 직접 전수 받은 비밀한 지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사도 요한이 요한 1서를 기록한 것은 케린투스의 이 같은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보고 있다.
(3) 오피스파(Ophites)
히폴리투스(Hippolytus, AD170-325)에 의해 시작 된 오피스파(Ophites: AD 100년 경)는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
(ὄφις opis, serpent)을 영지주의 지식의 전수자로 숭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4) 가인파(Cainians)
가인파(Cainites, Cainians)는 그 이름대로 동생 아벨을 죽인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Cain)을 숭배했다. 또한 이들은 에서
(Esau)와 고라(Korah)와 소돔과 고모라인들(Sodomites)을 숭배했다. 이 영지주의자들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은 죄악에 빠지는 것이 구원의 열쇠라고 믿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렇게 믿은 이유는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할 수만 있으면 육체를 비도덕적 행위들로 더럽혀야 한다는 사상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인파라는 이름은 한 종교적인 운동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된 것이지 가인의 후손들을 의미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가인이라는 인물에 대한 유일한 원천 자료인 성경에 따르면 가인의 후손들은 노아의 홍수 때에 모두 멸망하였으며
노아의 가족만이 살아남았는데 노아는 셋의 후손이었다.
(5) 카르포크라테스파(Carpocratians)
카르포크라테스파(Carpocratians: fl. AD 2세기)는 자유분방주의 영지주의 분파로 그들은 ‘히브리 복음서’(Gospel
according to the Hebrews)만을 따랐다.
(6) 보르보로스파(Borborites)
보르보로스파(Borborites)는 자유분방주의 영지주의파로서 니골라파(Nicolaitans)의 후예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 바울파(Paulicans)
바울파(Paulicans, Paulicianism)는 양자론 Adoptionism)을 주장한 분파들 중의 하나로 중세 시대 문헌에 따르면
영지주의 기독교인이며 반 마니교적 기독교인이라고 비난 받았다. 바울파는 AD 650년-872년 동안 아르메니아와 비잔틴
제국의 동부 테마들에서 번성하였다. 중세 비잔틴 문헌들에 따르면 바울파라는 이름은 AD 260년-268년 동안 소아시아
안디옥 총대주교였던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에서 유래하였다.
(8) 카타리파(Cathars)
카타리파(Cathars, Cathari)는 프랑스 남부 알비와 툴루즈를 중심으로 생겨난 이단이다. 이들의 교리는 이원론과
영지주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11세기에 주로 랑그도크 지역에 전파되었으며 12세기에서 13세기까지 교세를
확장하였다. 카타리파의 교리는 아르메니아의 바울파와 보고밀파의 영향을 받았다. 카타리파는 알비파와 합병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또한 이들은 마니교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카타리파가 고대 영지주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인가 하는 것은 현재 논쟁의 대상이다. 영지주의 우주론의 기본 컨셉트들이 카타르파에서 발견되고는 있지만, 고대
영지주의와는 달리 이들은 그노시스 즉 지식을 구원을 초래케 하는 힘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9) 카발라(Kabbalah)
영지주의의 사상은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h)에서 유대교적으로 변용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카발리스트들
(Kabbalists)은 영지주의의 여러 핵심 사상들을 수용하여 새로운 관점으로 초기 유대교 문헌들을 재해석했다.
카발리스트들은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 해안 프로방스(Provence)에서 기원했는데 당시 프로방스는 영지주의파인
카타리파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때문에 영지주의파인 카타리파가 유대인들에게 영지주의 사상을 전파하여 믿게 하였고
그 결과 카발라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믿어지고 있다. 또한 카발라의 출현에 영향을 준 다른 하나의 사상은 이슬람교의
이스마일파(Ismailis)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견해들과는 달리 카발라 추종자들은 카발라의 기원이 에덴동산 때 부터
있다고 주장한다.
카발라(Kabbalah)는 이교도의 가르침인 영지주의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에 영지주의와 같거나 유사한 개념들을
토라(Torah) 의 언어로 표현하고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의 다양한 종교들로부터 많은 수의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놀랍도록 영지주의자들의 신앙과 유사한 신비주의적인 유대교 버전으로 발전시켰다.
카발라와 영지주의는 여러 주제들에 있어 그 입장이 서로 일치한다. 예를 들면 영지주의의 신관(神觀)이나 창조론에 있어
일치한다. 그러나 카발라는 물질 세상과 히브리 성경이 하위 신(神) 또는 악한 신의 창조물이라는 나스틱파만의 두드러진
믿음은 수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카발라를 영지주의의 한 형태라고 보기 보다는 카발라와 영지주의 둘 다가 신플라톤주의와
신(新) 피타고라스주의와 동양의 신비주의 전통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 신비주의 전통에는
이슬람교 신비주의인 수피즘(Sufism)도 속한다.
결론적으로 이 영지주의야 말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단들의 원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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