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03 14:09
[전호진박사의 선교 이야기] 네비우스 자립원리의 마지막 파수자 한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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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sedKosin
조회 : 757  

               네비우스 자립원리의 마지막 파수자 한부선 

     고려신신학교 초기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사건은 박형룡 박사가 고려신학교 부임한지 불과 1년도 안 되어 서울로 올라 간 일이다. 혼자만 올라간 것이 아니라 조선신학교에서 온 학생들이 다 따라갔다. 이로 인하여 신학교와 고신 교단은 대 학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편협한 근본주의 집단으로. 한상동 목사는 박형룡이나 한부선이냐의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오고 말았다. 박박사는 미국 북장로교, 남장로교, 호주 장로교 카나다 장로교와 교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복안은 학장으로 학교운영을 위한 경제적 논리가 앞선 것으로 본다. 반면 한부선은 북장로교 신학의 좌경화로 북장로교를 떠난 자인데 북장로교회와 교류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신학과 신앙에서 같은 옥중성도이지만 좌경화한 4장로교단과 교류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 과거사에 대한 많은 글들은 주로 박박사는 포용주의적 교회관이고, 반면 한부선은 배타적 편협한 교회관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결론으로 경제적 논리에 의한 포용주의적 교회관, 즉 신학사상을 무시한 에큐매니칼주의는 성경적 원리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초대 기독교 에큐매니칼 공의회(Ecumenical Council)가 정의한 “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믿습니다”(Credo in unam sanctam catholicam et apstolicam ecclesiam)고 고백한다.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새계적이라는 의미이다. 즉 에큐메니칼이다. 그러나 고신이 중요시하는 진리안에서 세계성(국제적)을 추구해야 한다.

자립원리의 마지막 실천자 한부선

한부선은 한국교회에서 네비우스 자립선교원리를 마지막 실천한 자이다. 그의 영향으로 고신 선교부는 자립, 자치, 자력전파의 3자원리 선교정책을 수립하였다. 한선교사님은 가난한 신학생이나 신자들을 위하여 구제하는 일에 힘썼고 외부의 지원도 호소하였다. 당신은 설교에서 받은 사례비도 신학교에 헌금하였지만 결코 신학교 운영을 위하여는 모교단인 정통장로교회에 신학교를 위한 후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신학교는 교단교회가 철저히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우리 선교사들도 선교사님의 돈 관리는 배워야 한다. 필자가 황간옥포교회 전도사로 선교사님을 사경회(부흥회가 아님) 강사로 초청하였다. 집회 마친 후 3천원을 사례비로 드렸더니 얼른 포켓트에 받아 넣어셨다. 역시 선교사도 돈은 마다하지 않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 후 우체국 전신환 등기로 4천원을 보내주셨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박사는 총회신학교 운영을 위하여 맥킨타이어의 ICCC (WCC를 반대하기 하여 만든 교회연합기구) 로부터 3천만원을 받았다. 교류를 원하였든 4장로교단으로부터는 후원을 못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그 돈은 후일, 두고두고 박박사에 따라다니는 불명예가 되고 말았다. 교회와 선교를 위한 어떤 명목이든, 외부로부터 오는 돈에는 “사탄의 시험”이 따른다. 고려파도 이점에서 예외는 아니다. 70년대 고려신학대학은 화란개혁파  교회의 원조로 송도 학교 건물은 잘 지었다. 물론 교단 교회이 헌금도 있었지만, 그러나 교단의 “신령한 집”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당시 신학교의 서울 이전을 간절히 바랐든 서울지역 교회들에게 큰 실망을 주고 말았다.

정통장로교 선교부는 철저히 네비우스 자립원리를 신학생들에게 가르쳤다. 67년, 정통장로교 선교부는 총회신학교, 칼빈신학교, 고려신학교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네비우스 자립원리를 주제로 논문공모를 하였는데, 일등상은 고려신학교가 차지하였다. 일등상금은 150불이었다. 필자가 석사학위 과정은 선교학을 전공하겠다고 하자 “성경을 더 전공하지” 하셨다. 신학교수가 해외 유학하는 것도 크게 권장하지 않았다. 필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첫 자비량 학생이었다.

선교사님은 합리적 원칙주의자 이시다. 여기 부득이 선배목사님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76년 고신 출신 목사님이 미국시민권자로 정통장로교 선교부의 선교사로 한국 갈려고 지원하자 한부선 선교사님은 그것을 반대하였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한국에 선교사로 갈 수 있느냐고, 그래서 파송이 일년 지연되었었다. 우리 교단 교회 중에도 한국시민권자가 아닌 현지인을 선교사로 역 파송하는데, 고려할 일이다.

에밀 브루너를 긍정적으로 본 박형룡

한부선 선교사에 의하면 박형룡은 당시 신정통주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를 잘못보고 있었다고 하였다. 49년 에밀 브루너가 한국을 방문하자 박박사는 그를 총회신학교에 초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만류로 보류되었다. 초청되었다면 대형사고 될 뻔하였다. 브루너는 연세대학교 강의 후 어느 청년이 “박사님, 아당과 해와는 어떻개 탄생하였읍니까”하는 식 질문에 브루너 왈, “아담은 어느 원숭이 계통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답하였다(김양선, 한국교회해방십년사 참조).

해방전 평양신학교는 개혁주의 신학의 본산지였다. 평양신학교 구약학의 왕길지 박사는 대단한 구약학자였다. 그러나 호주장로교회 신학은 자유주의 영향하에 있었다. 그리하여 마팻박사등 개혁주의 선교사 교수들은 그에게 구약과목을 맡기지 않고 히브리어만 가르치게 하였다. 20세기 초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 로버트 스피어박사는 새계적 지도자여서 한국방문시 고종을 만날 정도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믿었지만 동시에 다원주의에 호의적이었다. 북장로교 선교부의 종교신학은 다원주의로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신사문제 대하여서도 초기에 선교사 개인판단에 맡기었다. 반면 남장로교회는 단호하여 학교 문닫는 한이 있더라도 참배반대를 지시하였다. 일본의 중앙신학교(현 고배개혁파신학교)가 신사참배 앞장서서 반대한 것은 남장로교 선교사 교장 풀톤때문이었다. 그는 왜 일본교회가 우상숭배 계명을 무시하고 신사참배를 하는지 당시 일본목사들의 설교를 면밀히 분석하였다. 대부분의 일본 목사들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구약성경은 설교하지 않고 신약성경을 주로 설교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4장로교회가 정통신학을 유지, 분열하지 않았다면 한부선 선교사는 시야가 좁은 분리자라고 해도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연합을 부르짖는 WCC에큐메니칼 운동은 한국교회는 물론 선교지 교회들을 다 분열시키고 말았다. 보수적인 미국 남장로교회도 보수주의자들이 탈퇴, PCA를 만들었다. 이 선교부는 철수할 때 대전 재산을 교신선교부에 인계하고 떠났다. 동남아에서 캄보디아와 라오스는 교회가 약하여 WCC로 인한 분열은 없다.

결론:

 한국교회는 네비우스 전략으로 성공한 교회로 세계가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성경적 원리를 실천하는 선교사들이 적은 것, 유감이다. 30년대 브루너, 바르트의 신정통신학은 새 정통으로 환호하였으나 구라파 교회를 영적으로 죽였다고 신학자들이 개탄한다. 바르트와 브루너는 흘러간 신학자들이다. 오직 성경신학만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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