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1-08-10 19:49
[전호진박사의 선교 이야기] 초기 한국 선교 : 노방전도에서 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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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sedKosin
조회 : 665  

<초기 한국 선교 : 노방전도에서 교회로>

1.  은둔의 나라, 미개한 나라

복음의 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지만 선교사들은 빨리 한국어를 배워 전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회당에서, 강의실(두란노서원, 행19), 아테네 광장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초기 선교사들은 그러한 공간이 없이 노방 전도를 하여 셀그륩을 만들었습니다.

사랑방 전도는 훗날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선교사가 한 가정집에서 전도할 때 많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조랑말이 유일한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노방전도로 혹은 병원 전도로 신자가 생겨, 소그룹이 교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2. 성경과 전도지 배포

성경이 부분적으로 번역되자 선교사들은 신자들 중 매서인을 임명하여 “쪽복음”과 전도지를 보급합니다. 매서란 책을 파는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무료로 주지 않았습니다.

매서인 중에 한국교회의 기초를 놓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서상윤과 서경조 형제입니다. 이들은 보부상으로 만주에서 병원 입원중에 스코트랜드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에게 전도를 받고 개종하자 바로 매서인으로 쪽복음과 전도지를 들고 압록강을 건너다 체포되어 감옥에 같히지만  친척의 도움으로 탈출, 만주로 돌아가서 로스에게 상황을 보고합니다.

일설에 압수당한 성경은 다 빼앗기고 불에 태워지고 압록강 물에 뿌려졌다고.  이 소식을 들은 로스 선교사는 “순사가 불태운 성경의 재는 한국교회의 좋은 거름이 될 것이고, 강물에 던져진 그 물은 한국교회의 생수가 될 것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언문”성경을 산 신자들은 그룹으로 혹은 선교사의 지도로 성경을 배우면서 암송하는 것을 중시하였습니다. 암송대회가 60년대 70년대도 유행하였습니다. 제가 전도사로 사역할 때 60대 한 여집사님은 귀가 어둡지만 요한계시록 1-7장까지를 글자하나 안틀리고 다 외어 지방 여전도회에서 두번 우승하였습니다.

3. 최초의 한국교회

서경조 형제는 황해도 소래로 피신중 소래에서 전도하여 초라한 초가집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이것이 유명한 한국의 최초의 소래교회의 시작입입니다.

장로교회는 선교사들이 일절 교회당 건축과 사역자들에게 돈을 주지 않았읍니다. 서양돈으로 교회당을 세운 많은 아시아교회들과 달리 한국교회는 교회건축 양식은 철저히 토착 건물,  초가집과 기와집이었습니다.

사진의 기와집 교회는 전북의 유명한 금산교회입니다. 전북 문화재로 지정된 교회입니다. 기역자 건물인데 남녀를 분리하고 중간에는 포장으로 가려 남자와 여자가 서로 못보게하였습니다. 목사는 중간에서 양쪽을 보았지요. 이 교회의 조덕삼 장로와 머슴출신 이자익 목사는 한국교회의 자랑입니다.

4. 설교자와 사역자

설교할 평신도들이 공부할 학교는 서울외에 없었읍니다. 선교사들은 지역별로 몇교회 혹은 수백명 모여서 사경회 즉 “성경을 살피는 모임” 성경공부를 하였읍니다. 이것이 오늘날 모든 교회가 하는 연례행사 부흥회의 기원입니다.

여기서 공부한 자들 중에 성경을 잘 가르치고 헌신적인 자들이 나중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사역자들에게 일절 지원하지 않았읍니다. 장로교회 목사 양성소인 평양신학교는 초기 3개월씩 공부하다가 9개월 단위로 학기가 발전하였읍니다.

4. 사경회(Bible Conference) 시작

교회와 셀 그룹이 많이 세워지자 선교사들은 지방별로 대표 신자들을 초청, 성경을 가르치는 집회, 사경회를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 부흥집회의 시작입니다. 부흥집회는 “심령을 부흥”시키는 것으로 알지만 성경을 바로 가르치어 성경이 영적 부흥을 일으키도록 하였읍니다.

선교사들은 성령은 In the Bible, with the Bible, by the Bible에 의하여 역사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새운 교회를 다 가르치고 목회할 수 없어 사경회에서 공부한 자들이 돌아가서 자기 교회 신자들을 가르치고 평신도로 목회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성례식은 못하지만 말씀가르치는 전도사 제도를 발전시켰습니다. 처음부터 무보수 평신도 목회를 발전시킨 교회입니다. 사경회가 장기간의 Bible Class로 그리고 평양신학교로 발전합니다.

5. 1907년 평양신학교 시작

한가지 의문은 한국의 중심은 서울인데, 왜 장로교 는 평양인가? 장로교 첫 선교사 언더우드는 조랑말로 용감하게 전국을 다니면서 복음을 잘 받는 지역이 평양이라고 확신하여 북장로교는 평양을 선교의 거점으로 하여 장로교는 평양남북도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2021. 06.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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