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3-03 16:02
[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16) 아펜젤러의 성서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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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se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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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16) 아펜젤러의 성서번역

성경 한글 번역 주도… 민중 복음화에 기여

입력 2015-03-03
[한국 근대교육 선구자, 아펜젤러] (16) 아펜젤러의 성서번역 기사의 사진
아펜젤러의 ‘누가복음젼’ 번역 성경. 절마다 구분이 있고 문장의 끝부분에 ‘ㅇ’ 표시가 있다(위). 이수정이 일본에서 성서를 번역할 당시에 찍은 사진으로 맨 앞줄 오른쪽 4번째가 이수정.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요한 교수 제공
한국에 들어온 성서는 처음에 외국어로 들어왔다. 영어 한문 일본어였다. 순종의 실록과 바질 홀(Basil Hall)의 항해 기록 등을 보면 영어 성서가 1816년 9월에 들어온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성서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한국에 전래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으나 이 사건이 한국인에게 영향을 주어 복음의 결실이 있었는지에 관한 여부는 안타깝게도 남아있지 않다. 단순히 전래된 영어와 한문 성경은 한국인의 신앙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는 힘들었다. 성서 번역이 선교 현지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과 중국에 개신교가 전래되고 정착되었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성경 번역이 착수되고 전파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번역은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언어와 문화, 생활 등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서 번역은 만주 지역에 선교사로 왔던 존 로스와 매킨 타이어가 1870년대 중반, 한국인의 도움으로 성서를 번역한 게 시초였다. 그러나 당시 번역에는 이북 지역 방언 등이 많이 반영되어 서울을 비롯한 이남 지역에서는 읽기에 이질감이 느껴져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로스역본의 수정이 필요함을 제기했다. 존 로스와 매킨 타이어가 이북지역 방언을 그대로 두었던 이유는 서울말과는 다르지만 한국인들이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번역 과정에서 최대한 한국인 번역자의 입장을 존중했고 그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이수정이 일본에서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는 한국인 번역자의 검토 결과, 기존 한문 성서에 한글로 토를 달아 표시했기 때문에 예수를 신(神)의 아들로 표기해 자칫 귀신의 아들로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어 수정이 필요함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존 로스 역본과 이수정 역본은 한글 성서가 번역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모본이 되어 성서 번역에 있어 큰 역할을 했다. 이들의 노고 덕분에 성서가 비교적 빠르게 수정, 번역됐다. 민중의 언어였던 한글 덕분에 민중들은 성서를 읽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한글 성서 번역에 매진한 아펜젤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는 한국에 도착하던 1885년부터 ‘신약성경’을 한국말로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에 대한 긴 논의와 고민을 했다. 이들은 신약성서를 한글로 번역하기 위해 1887년 성서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수정이 번역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를 한글 번역 성경의 모본으로 하여 성경 내용에 오해의 소지가 있던 부분을 한국인 번역자의 도움을 받아 수정, ‘마가의젼한복음셔언해’를 번역 출판했다.

1890년 아펜젤러는 로스역본의 ‘누가복음젼셔’와 ‘로마’를 모본으로 누가복음과 로마서(보라달로마인셔:바울이 로마인에게 전달한 편지)를 번역했고 1892년 게일은 사도행전, 펜윅은 요한복음을 번역했다. 언더우드와 스크랜턴은 마태복음을 번역하기로 했으나 이들은 업무 과중과 건강 문제로 번역을 완성하지 못하고 안식년을 맞았다. 이후 아펜젤러와 게일이 업무를 이어 받아 마태복음을 번역했다. 1893년에는 영국성서공회가 주도하여 성서번역자회(The Permanent Executive Bible Committee)를 조직했고 1895년에 이르러 선교사 개인의 역본이지만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를 번역하여 낱권으로 출판했다.

아펜젤러는 성서번역자회의 위원으로 있으면서 성경 번역을 주도했다. 특히 그는 기존의 성서 번역자이었던 로스역본을 중시해 잘 번역된 부분은 최대한 살리면서 문법 요소 등을 교체해 나갔다. 존로스 역본의 ‘누가복음젼셔’, ‘로마’를 아펜젤러의 ‘누가복음젼’, ‘보라달로마인셔’와 함께 살펴보면 당시 서북 방언을 서울말로 고쳤는데 띄어쓰기와 조사, 어미의 수정, 표기 및 음운 현상, 어휘 등에 역점을 두어 한국어 성경의 표준어를 구사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아펜젤러 번역본의 특징

가장 큰 차이는 로스역은 절이나 문장을 구분하는 띄어쓰기와 표시가 없으나 아펜젤러는 절마다 띄어쓰기가 되었고 문장의 마침을 표시하는 ‘ㅇ’ 표시가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로스역본은 중국어 문리 성경을 가지고 번역하여 전반적으로 높임법이 쓰이지 않고 있다. 반면 아펜젤러 역본에는 ‘주(主)’ ‘하나님’ 및 예수의 제자에 대해 제한적인 높임법 조사인 ‘께’를 사용했다.

또한 이들의 역본이 공통적으로 ‘동생’을 사용하고 있는데 현대국어의 의미는 손아랫사람을 의미하거나, 함께 있는 남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이 시기에는 ‘형제’와 같은 뜻으로 ‘동생’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였다. 예를 들어 로마서 10장 1절의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를 “동생들아 내 마음에 깃거함과 하나님의게 빌미 뎌희로 구완케 함은”이라고 썼다.

번역이 시작된 지 10년이 지난 1900년. 드디어 신약이 완역되어 낱권이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신약젼셔’로 출판하게 된다. 정동제일교회에서 드린 감사예배에서 완역된 신약성서를 봉헌했다. 하지만 처음의 ‘신약젼서’는 선교사 개인역을 묶은 것이기 때문에 성서번역자회의 공인을 위해서는 수정 작업이 있어야 했고 한글 성서 번역을 주도하였던 아펜젤러는 레이놀즈와 게일과 함께 중요한 책임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성서번역을 위해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순직을 맞이하게 된다. 성서번역자회의 ‘신약젼서’의 수정과 보완 작업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에서 배를 타고 목포로 가던 중 다른 선박과 충돌해 한국인 조사 조성규와 함께 사고를 당하게 된다.

소요한 명지대 객원교수·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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