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교사 열전] 43- Linnie Davis (리니 데이비스 : 하위렴 선교사 부인) 선교사
- 작성자 : Henry Park
- 20-07-25 20:19
Linnie Davis (리니 데이비스 : 하위렴 선교사 부인) 선교- 1892년 입국
리니 데이비스 해리슨 선교사(Linnie Davis Harrison)는 1862년 미국 버지니아(Virginia) 주 에빙던(Abingdon)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 어머니의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조선(한국) 선교를 결심하고, 1892년 10월 17일 남장로교 최초의 7인 선교사 중 한명으로 조선(한국)에 오게된다.
서울에 도착하여 알렌(Allen) 선교사의 집에 머무르다가 서대문 선교부로 옮겨 동네 아이들과 부인들을 사귀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낮에는 평균 80여 가정을 심방함으로써 일년 동안 무려 1,693명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밤에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성경과 찬송을 가르쳤다.
1896년 군산 선교부에 배치되어 어린아이들과 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1893년 해리슨(하위렴) 선교사와
결혼하였다. 남편 해리슨 선교사는 4살 연하로 그녀보다 2년뒤 조선(한국)에 온 의사로, 목사 안수를 받은 선교사로,
전주에서 사역중이었다.
이들은 전주에 터전을 잡고 어린아이들과 부인들, 그리고 환자들을 향하여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김창국 소년을
자기 집 사환으로 채용하고, 가르침을 통하여 훗날 훌륭한 목회자가 되게 하였다.
사실 데이비스 선교사는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하여 조선(한국) 선교의 절실함을 깨달았지만 조선(한국)에 오기에는 장애가
많았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가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기에, 데이비스 선교사는 떠나는 날을 연기하려 하였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야단치듯 떠날 것을 요구하였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조선(한국)을 오게 된
것이다.
남장로교 7인 선발대 중 처녀의 몸으로 조선(한국)에 선교사가 두 명이니 데이비스 선교사와 최의덕 선교사의 여동생인
매티 선교사가 그들이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7인 선발대중 가장 먼저 조선(한국)에 도착한다. 서울에 도착한지 9일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된다. 조선(한국)과 미국은 너무나 먼 거리여서 갈 수 없었지만 천국에서 어머니를
다시 만날 때는 조선(한국)의 수많은 영혼들과 함께 만나겠다고 눈물로 쓴 일기가 우리들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하위렴 선교사 부부가 결혼한 후 전주의 선교는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남장로교 선교부는 전주에 잉골드(Ingold)라는
여 의료선교사를 파견하여 하위렴 선교사와 협력하여 세운 병원이 바로 전주예수병원이다.
그녀는 남편 하위렴 선교사를 도와 전북 지방선교를 위해 헌신적 삶을 살았다. 누구보다도 헌신적 삶을 통해 환자들을
돌보아 주었다. 병들어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아주면서 예수의 사랑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만 열병(뎅기열)에 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41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만다. 동료 선교사들은
그녀를 가리켜 “생명을 받쳐 선교한 여장부”라고 하며 애도하였다. 데이비스 선교사의 희생적 삶을 잊을 수 없었던 군산
영명학교 학생들은 성금을 모아 1958년 군산 선교지였던 군산 구암에 기념비를 세웠으며, 그 땅이 개인에게 팔리게 되자,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전주시 화산동 외국인 묘지로 기념비를 옮겼다.
혹자는 데이비스 선교사를 전라도 최초의 순교자로 여기기도 한다.
『계속』
박흥배 목사
안디옥 세계선교협의회 회장
왈브릿지 열방교회 담임목사
revpark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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