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총회 40년] 4. 재미총회 조직을 위한 오랜 준비
- 작성자 : EU기획홍보처
- 24-10-23 15:53
4. 재미총회 조직을 위한 오랜 준비
나삼진 목사(Evangelia University 교수)
미국에서의 고신교회가 생기긱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였다. 당시 고신총회의 기관지였던 〈고신대학보〉는 1977년 10월호에서 당시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한국교회의 선교정책과 방향’ 특집과 ‘해외 선교사의 선교 보고’를 특별기획으로 함께 실었다. 이 특별기획에는 선교사로서 미주지역 교민목회를 하던 브라질 정길수, 아르헨티나 이종철, 캐나다 김용출 선교사의 선교보고가 포함되어 있다.
1979년에는 부산남교회 이용기 집사가 〈크리스챤 라이프〉 미국 특파원으로 2개월 동안 미국 방문 중에 고신 출신 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를 탐방, 〈고신대학보〉에 ‘교단 미주 선교 정책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나성삼일교회(한기태 박사), 피닉스한인장로교회(전재린 목사), 캐나다 고신장로교회(박상순 목사) 등 여섯 교회 탐방기를 실었는데, 이러한 글들이 초기 미주 고신교회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재미총회는 1985년에 창립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오랜 준비를 거쳐 이루어졌다. 《재미총회 10년사》에서는 재미총회 설립 배경에 “1978년경에는 한명동 목사와 박상순 목사가 도미하여 미주에 노회를 조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준비되었다. 한국총회 선교부장 한명동 목사가 미국을 방문하는 중에 미주에 있는 고신 출신 목사와 장로들이 노회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아 1978년 7월 4일 발기총회를 가졌고, 회장에 박상순 목사를 선출하였다. 그러나 총회 헌법의 구성요건이 맞지 않고, 한국총회에서 제명된 이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총회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박상순 목사는 설립노회의 총회 인준은 물론, 이듬해 나성삼일교회에서 회집하려는 미주노회에 한국 교단 대표 3인의 파송을 요청하였지만, 한국 총회 임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미주노회의 인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70년 고려신학대학 인가 후 미국과 캐나다에 이주하였던 고신교회 성도들이 고신대학을 후원하는 움직임이 여러 차례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김용출 목사를 비롯한 여섯 가정이 1977년 6월 18일 고신후원회를 창립하고 고신대학의 도서구입 헌금으로 월 400달러씩 헌금하기로 하고, 1차로 인편으로 600달러를 보내었다. 1978년에 미국에서 박인순 전도사와 정홍권 교수가 주소록을 수집하여 발간하기로 했고, 유학생이던 황창기 목사와 정홍권 전도사에 의해 개혁주의 선교회(1978)가 조직되었다.
미국에서 고신교회 노회 조직을 위한 흐름은 유학 후 교포교회 목회자였던 박재영 목사와 선교사로 왔던 김용출 목사(1973), 김만우 목사(1979), 신현국 목사(1983) 그룹이 뜻을 같이 했다. 김만우 목사는 필라델피아한인장로교회를 목회하면서 고신교회 출신 성도들을 규합하고 교단 사업에 협력하기 위해 고신후원회를 조직(1980)하여 활동했다. 1982년 4월에는 미주 고신노회 조직을 위한 서명 작업을 해 목사 13명, 전도사 2명이 서명하였고, 8월 16일 선교부장 한명동 목사의 요청으로 총회장 최일영 목사와 고신대학장 이근삼 박사가 필라델피아제일장로교회에서 함께 모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러한 노력이 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된 것은 이근삼 박사가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1982. 3. 18)에 고신대 학생들이 연루되어 그 책임을 지고 학장직을 사임하고 안식년을 얻어 미국에 체류하면서, 그의 회갑을 축하하는 제1회 고신인 모임을 1983년 10월 펜실베니아주 포코노수양관에서 18명의 목회자들과 유학생들이 모인 것에서 비롯된다. 이근삼 박사 생일 축하모임은 몇 년 동언 고신인모임으로 계속해 재미총회가 조직되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무렵 한국총회 회록서기와 서기를 지낸 신현국 목사가 선교사로 파송되어 산호세한인교회 목회를 시작하면서 1984년 2월 필라델피아삼일교회 집회차 방문했을 때, 재미노회 조직의 공감대를 이루었고, 1984년 11월 5일부터 이틀간 포고노수양관에서 33명이 모인 가운데 제2회 고신인 모임에서 이를 재확인하고 제3회 모임에서 노회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았다.
1985년 2월 4일에는 이근삼 박사 귀국 송별 모임을 뉴욕 서울하우스에서 가졌는데, 이근삼, 박재영. 김만우, 신현국 목사, 김진경 장로 등이 1984년에 3개항에 합의하고 그 원칙을 문서화하여 서명하였다.
사진: 북미고신노회 조직 발기문(198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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