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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재미총회 40년] 20. 아메리카의 땅끝 남미노회, 그 성장과 초토화


20. 아메리카의 땅끝 남미노회, 그 성장과 초토화

                                                                                   나삼진 목사(Evangelia University 교수)

남아메리카 대륙은 한국에서 가장 먼 지역으로 실로 지구의 땅끝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면 로스엔젤레스까지 약 11시간이 걸리고, 다시 11시간을 날아가야 브라질 상파울로에 도착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남미노회는 재미총회 ‘아메리카의 땅끝’이기도 하다.

미국 이민은 초기에 남미이민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에 한국인 남미 이민자들은 당시 한국에서 발달되었던 섬유산업의 경험에 능숙한 재봉솜씨로 의류직물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업을 하면서 싼 임금의 현지노동자들을 고용해 상당한 자산을 모은 이들이 많았고, 남미지역의 한인교회 또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남미지역이 워낙 한국에서 거리가 멀고, 미국이 가장 선호하는 이민지였기 때문에 정착한 사람들 중에 미국으로 재이민을 가는 경우가 많아 교회의 안정적인 성장에 어려움을 주었다.

남미에 여러 교회들이 설립되면서 재미총회 지도자들은 남미노회 조직을 위해 힘썼고, 기획위원들의 남미지역 순방과 남미에서의 종말론 순회강좌는 그러한 것의 일환이었다. 재미총회에서 있었던 종말론 공개 신학강가 1994년 5월 3일부터 19일까지 상파울로 대흥교회에서 개최되었다. ‘21세기의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이근삼 박사가 담당하였는데, 두 주 동안 매일 오전 3시간씩 강의가 진행되는 강행군이었다. 5월 3일부터 5일까지 ‘종말론’,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개혁주의’,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조직신학’을 강의하였다.

이때 주말집회도 함께 개최하였는데, 4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빌라델비아교회(남영환 목사), 5월 6일부터 8일까지와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한성교회(배성학 목사), 5월 20일부터 22일까지 평안교회(박성천 목사)에서 있었다. 매일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 진행되었다.

이 기간에 남미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상파울로 한성교회당에서 이근삼 박사가 ‘목회자와 신학’, 박재영 목사가 ‘목회 윤리’, 남영환 목사가 ‘목회자와 심방’, 민영완 목사가 ‘목회자와 설교’를 주제로 강의하였다. 초교파 목회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고신의 개혁주의 신학과 목회를 소개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남미 목회자들의 재교육 기회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남미지역의 목회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1994년 11월 8일부터 10일 뉴저지제일한인교회에서 개최된 제10회 총회에서는 남미노회가 조직되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 산재한 교회들이 재미총회의 관할이 되었다. 회장 남영환, 부회장 배봉규, 회록서기 김기석, 회계 장성태가 임원으로 선임되었다.

제11회(1995) 총회를 기해 발행된 《재미총회 10년사》에는 남미노회가 브라질 상파울로에 대흥교회(배봉규)와 빌라델비아교회(남영환), 초대교회(배성학), 아르헨티나에 멘도사장로교회(윤춘식), 에벤에셀교회, 한빛교회(김준웅)가 있었고, 파라과이 김기석, 김진호, 이정건, 최승열 선교사가 노회원 명부에 올려 있다.

그러나 이후 총회선교부에서 선교사들은 재미총회에 참석하지 말도록 행정조치를 함으로써 선교사들이 교포교회를 담임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일로 성장하던 남미노회가 초토화되었다. 최근 KWMC 사무총장 조용중 선교사와 대화하는 중에 이는 당시 한국선교계가 함께 한 결정으로, 지금 생각하면 중대한 실수였다고 회고하였다. 선교사들의 재미총회 참여 금지와 총회 이탈은 성급한 결정으로 남미선교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

이것은 각 지역의 교포교회가 원주민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간과하였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설익은 선교이론으로 선교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결의를 선교본부에서 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제20회 총회에서 대책위원을 내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고, 박재영 목사는 태국에서 개최된 선교포럼에서 이 일을 항의한 바 있다고 회고한다. 이 일로 남미노회의 중심이 되는 교회를 여러 잃어버렸다.

사진: 파라과이 선교지를 방문한 총회 기획위원들(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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