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두목사 칼럼]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 작성자 : HesedKosin
- 20-08-30 14:26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이곳 미국 땅에도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매일같이 보이는 듯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도 더 극성을 부리고 있어서 매일 천 여명의 사망자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사용하기 싫어하던 얼굴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상점에도 들어갈 수없도록 규제한지도 한참되었습니다.
이 무서운 전염병이 속히 물러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어느 날 아침 묵상 시간에 문득 오래전에 독일의 “오버아마가우”(Overamagau)를 방문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주민 5천여명이 조용하게 살고 있는 이 마을은 북부 알프스 산맥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시골입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관광 안내를 하고 있던 변장기집사님의 제안으로 날씨 따뜻한 5월 중순에 집사님 가족과 함께 이른 아침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그 곳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지도를 펴보니 취리히 동쪽 방향으로 약 세시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취리히에서 1번 고속도로를 따라 쌍갈렌을 지나니 곧 한적한 독일 국경이 나왔습니다. 독일 방문 목적을 설명하자 “어서 오세요”(Willkommen)라는 친절한 인사로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시원하게 뚫린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리는 동안 차창 박 숲 속의 향취가 차 안 까지 밀려 오는 듯 했습니다. 아메르 강이 조용히 흐르는 강변의 마을 “오버아마가우“ 마을 입구에는 “환영합니다”라는 푯말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연극(Passion Play)을 알리는 포스트들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연극 장소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넓은 공터에 야외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미 많은 관객들이 무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옷차림새를 보면 멀리서 온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연극은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부터 시작하여 성장 과정, 공 사역의 시작과 함께 제자를 부르신 장면, 병을 고치는 사역, 유대인들과의 갈등, 삭개오의 회심 장면 등 그리스도의 사역과 예루살렘 입성과 환영, 성전에서의 가르치심, 고소를 당하신 일, 재판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히는 처절한 그리스도 고난의 장면을 클라이막스로 무덤에 장사 지내심과 부활하심 등 주님의 일생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감동적인 연극이었습니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모두가 이 마을의 주민들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마리아도, 종려 가지를 꺽어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어린이들도, 모두 친근한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눈먼 소경 바디메오 역을 잘 소화시키고 있는 사람도 역시 이 마을에 사는 신실한 성도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가슴 저미며 눈물을 쏟고 있는 마리아를 주시하던 관객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저절로 나오는 듯 했습니다. 예술 작품으로서의 연극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진한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연극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38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전 유럽에는 흑사병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흑사병은 이미 수 많은 유럽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이미 300년 이상 유럽인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있었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이었습니다. 한 마을에 덮쳐면 주민들의 삼분의 일 이상의 생명을 빼앗고 또 다음 동네로 퍼져가는 무서운 전염성을 가진 질병이었습니다. 아직 이 병이 도착하지 않은 마을에서는 시시각각으로 들려 오는 흉흉한 소식에 몸서리를 쳐야만 했습니다. 이 병이 지금 이쪽 산 넘어 마을까지 왔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밤잠을 설치고 떨었습니다.
오버아마가우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 무서운 병이 바로 산 넘어 동네까지 덮쳤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그날 오후에는 마을 주민 한 사람이 그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주민들은 너나 할 것없이 모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노인도, 청년도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모여 눈물겨운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우리를 이 병에서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 모든 동민들은 앞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일생을 우리 모두가 나서서 알리겠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겠습니다...”
주민들은 이 기도로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모든 주민들은 주님이 받으신 고난을 생각했습니다. 고난 후 부활의 주님도 바라 보았습니다. 이 기도가 계속되는 동안 이미 전염병은 마을을 덮치고도 남을 날들이 지나갔습니다. 동민들이 흑사병으로 쓸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동민 들 중에 쓸어지거나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사방 마을들에서는 가족을 잃은 통곡 소리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버아마가우 동민들은 아무도 가족을 잃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흑사병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해인 1634년 봄이 돌아왔습니다. 동민들은 모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의논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그리스도의 삶을 전하기 위하여 각자가 맡을 역할을 생각하였습니다. 칠순의 노인도, 어린 아이들도 동참했습니다. 이웃 마을 주민들을 초청하여 대접하면서 이 연극을 발표하게 된 동기와 하나님과의 약속을 설명하였습니다. 그 해 온 여름과 가을 서늘한 바람이 불 때까지 주민들은 주님의 삶을 전하기 위하여 구슬 땀을 흘리며 연극에 몰두했습니다. 그들은 다음의 연극을 발표하기 위하여 십년동안 준비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 대로 매 십년을 주기로 연극은 계속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차차 퍼지게 되어 전 유럽의 주민들이 이 감동적인 연극을 보기 위하여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연극은 385년 동안 세계 제1차, 2차 대전이 일어난 동안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습니다.
연극이 끝나자 동네를 조용히 품에 안고있는 알프스 산맥에 이미 어둠이 깃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마을을 빠져 나와 다시 취리히로 향하였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빠르게 운전하는 변집사님도, 부인도, 두 아이도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표정을 보면 주님의 삶을 되새기는 듯 했습니다. 평소에 말하기를 아주 좋아하고 입담이 좋은 변집사님도 오늘 만큼은 너무나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편의 한 구절이 떠 올랐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주님은 오늘도 우리 마을에 찾아 오셔서 몹쓸 전염병을 막고 계신다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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