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교회 당회록 서두에
나오는 “삼일교회 발족의 유래”에서는 그 의의를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으로 찾고 있습니다. 삼일교회가 생기게 된 먼 원인은 “세계 제 이차 대전 종말과 더불어 셰계는 이대 사조(필자주: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 분열되어 상극”하므로 인해 “교계는 교계대로 사분오열하여 말세의 직감”을 주므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피안지사로
보이던 신학적 분열”(필자주: 서구의 신학적 분열을 의미함)이 “노도지세로 우리 한국교회로 밀려와 다정스럽던 교회, 신앙뿐만 아니라 복음의 자리 믿음의 울타리를 산산이 부수고 분열의 고배를 마시게 한 것”을 탄식한 데서 찾고 있습니다.
이런 원인으로 작용한 정세뿐만 아니라 삼일교회가 생기게 된 가까운 원인(原因)으로는 “일정의 신사참배 문제가 기인된 후로 우리 한국
교계는 그 혹독한 기독교 탄압으로 각 교회는 부패될 대로 부패되었으며 곡절에 곡절을 거듭”하게 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를 두 가지로 삼일교회 당회록은 밝히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삼일교회가 발족되기 14년
전 1937 년 9월 10일
제 27회 조선 예수교 장로 총회는 ‘평양 평서, 안주 3노회 연합대표 박00 씨의
신사참배 결의 및 성명서를 채용하다라고 총회록에 기재했는데,
그 내용인즉 “우리들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고 기독의 교리에 위반하지 않은 본의(本義)를 이해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의식으로
자각하여,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서 총후황국 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로 기함”으로 성명하므로써 “신사참배가 죄가 아님을 지적한 것”에 삼일교우들은 분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종교적 분노와 탄식뿐만 아니라 삼일교우들은 강한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 세속정치에 몰두하는 민족주의자는 아니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정해주신
“방언과 종족과 지방과 나라”(창 10: 5)에 따라 경계지어주신 고유한 민족역사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정해주신 경계를 무시한 채 한일합병 하는 처사는 가당치 않게 여길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민족적 유린과 울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용광로를 교회를 통하여 참다운 민족적 자각심을 일깨워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울분을 삼일교회 당회록 서두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대전 말기에는 한국총회를 기독교 교단에 합류시켜 한국총회를 일본 기독교 교단에 합류시켜 한국총회를 그 지부격으로 만들어 총회원을 모조리 일본 기독교 연맹에 가입시켰던 것입니다. 그 시에 땅 위에는 신앙의 절조는 여지 없이 타락되고 참다운 신자는 불 수 없으리만큼 악령이 팽창하여, 교회당을 일본군 창고, 벽창소로 사용하기까지 유린 삭탁당했던 것입니다” 고 합니다. 이렇게 교회의 눈으로
일본의 정치적 마수와 계략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