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2-12 13:16
[전병두목사 목회 컬럼] 92센트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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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sedMoon
조회 : 3,513  
   92센트 헌금 이야기.docx (20.6K) [11] DATE : 2016-12-12 13:20:07

92센트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헌금) 

                   전병두목사/ 유진 중앙 교회(미국 오레곤 주 유진/스프링필드 소재)

 

그 날 새벽도 예외 없이 차가운 새벽공기가 전신을 감돌았다.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는 길을 지나 교회 당 문 앞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검은 물체가 싸늘한 콩크리트 바닥에 엎드려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여러 해 전에 처음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전신이 얼어 붙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었다.
“Who are you?”
“What are you doing here?”
나도 모르게 더듬거리며 튀어나왔던 말이었다.
그 때 나는 무척 당황하였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었다.
매일 같이 방송과 일간지에서 보고 들어왔던 끔찍한 범죄의 현장이 바로 이 자리가 아닌지 하는 걱정도 되었다.
두려움에 떨고 서 있던 나를 조용히 쳐다 보던 그는 겹겹이 뒤집어 쓰고 있던 옷가지들을 벗기고 더벅 머리를 내 밀었다.
겨우 잠에서 깨어난 듯한 모습으로 추위에 떨고 있던 그는 한 중년 백인 여성이었다.
스프링이 튀듯이 나는 애원썩인 음성으로 말했다.
“어서 이 자리를 떠나세요. 얼마 있지 않으면 교인들이 기도하러 옵니다”
우왕 좌왕하는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그는 주섬 주섬 옷가지를 끌고 어둠 속으로 사려져 버렸다.
잠시의 적막이 흐른 후 안도의 한숨을 쉬던 나를 발견하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문득 문득 그 여인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런 힘도, 방어 태세도 되어 있지도 못하던 한 홈리스 앞에서 안절 부절 못하던 동양에서 온 목사의 모습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였을 까.
떳떳지 못한 나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국정 연설(The State of Union)이 생각났다.
미국 전역으로 생 중계된 상,하원 합동 연설을 통해서 각 가정에 전달된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던 부분이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경제가 지난 세기 어느 때 보다도 호전되는 나라라고 강조할 때 청중들은 여, 야당 할 것 없이 자리에서 벌떡 벌떡 일어나 환호하였다. 박수 소리가 진동하였었다.
화려한 청중들의 옷 차림, 반짝이는 계급장과 훈장으로 어깨와 가슴을 온통 수놓은 듯한 제복을 입은 고위 군인들의 얼굴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바로 내 발 앞에서 싸늘한 새벽공기를 그대로 몸으로 맞으며 오갈 데 없어 헤메다가 소박한 교회의 대문 앞에 누워 새우 잠을 청하는 이 사람의 모습은 여기가 미국 땅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풍요한 나라 미국이란 말은 허상처럼 내게 다가왔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먹을 것, 입을 것 주거 걱정이 없다는 유토피아 세계를 꿈꾸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든 미국이란 대국의 실상이 이런 것인가?
대 도시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의 그늘에 가리워진 구석 구석에는 홈리스 피플들의 애환의 흔적 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곤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조국 땅에도 구걸하던 사람들을 심삼찮게 보았던 기억이 남아있지만 여기 미국 땅에서처럼 떼를 지어 곳곳에 포진한 모습을 본 기억은 별로 없다.

이곳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자동차들이 잠시 정차하는 사거리의 한쪽에 서서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적은 이런 팻말 들을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운전자들을 뚫어 지게 쳐다 보는 홈리스 피플 들을 보는 일은 아주 흔한 일이다.
“Anything can help!”
“God bless you!”

홈리스 피플들이 집단으로 모여 천막 촌을 이루어 하루 하루 연명하는 빈민들은 미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주택가를 찾아 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몇 일이 지난 어느 날 새벽에 교회당 문 앞의 싸늘한 시멘트 바닥에 누워있는 또 한 사람의 홈리스를 발견하였다.
웬지 안쓰럽고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죽은 듯이 누워있는 이 사람이 내 발 자욱 소리에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친 몸을 조금이라도 잠으로 풀고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 많은 건물들 중에서 교회당 추녀 밑을 찾아와 지친 심신을 추스르는 것이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을 바라고 이 사람은 이 교회당 건물을 찾아 왔을 까.
교회당 간판이 한국어로 된 낯선 교회당을 찾아 온 것은 무슨 이유 일까?
아주 조심스럽게 교회당 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누워 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었다.
“Hello, how are you?”
나는 아주 침착하게 그리고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안심을 시키며 말을 건넸다.
“Hi...”
조용히 내 귀를 찾아 온 대답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What time?”
“새벽 네시 반입니다”
30대 중반 정도되어 보이는 남자 청년이었다.
매우 미안해 하는 눈치였다.
편한 마음으로 쉬라는 시늉을 하고 따끈한 커피 한잔을 건냈다.
기도회가 끝난 후 교회당 문을 열였을 때는 문앞에 아무도 없었다.
다만 반짝이는 동전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전에 교회당에 들어 올 때만 해도 그 자리에 없었던 동전들이었다.
25센트 짜리 3개, 10센트 짜리 한 개, 오센트 짜리 한 개 그리고 일센트 짜리 두 개 합계 92센트였다.
그 중에서도 두 개의 일센트 짜리 동전은 방금 은행 금고에서 꺼낸 듯 금동의 빛으로 반짝이고 있어다.
동전의 합계는 일 달러에서 8센트가 모자라는 돈이었다.
가슴이 뭉클하였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이미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누웠던 자리는 젖은 옷에서 묻어 나온 물기로 희미한 얼룩만 남아 있었다.
내 손 안에 잡힌 92센트는 엄청난 무게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 홈리스에게 이 돈은 전 재산이었을는지 모른다.
눈 바람 맞으며 자동차가 신호 대기로 잠시 머무는 어느 길목에 서서 애타게 구걸하여 얻은 돈일 수도 있고, 따끈한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고 싶어 아껴 두었던 동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전부를 털어서 교회당 문 밖 바닥에 고스란히 내어 놓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날 새벽, 나는 조용히 상념에 잠겼다.
추운 정월 달 중순에 교회당을 찾아와 문 밖에서 새우 잠을 청하였던 그 홈리스 백인이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이 동전들은 그 백인을 든든하게 지켜 준 위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주머니의 모든 동전을 털어서 동양인의 교회당 문 앞 바닥에 떨어 뜨리고 훌훌히 사라진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오는 주일 예배의 헌금 시간에 그 동전들을 홈리스 몫으로 헌금 함에 넣으리라.
그리고 그를 기억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리라.
미국의 위대한 힘은 홈리스가 없는 나라, 군사 대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찬바람 속에서 생명을 버텨나가는 무명의 홈리스의 마음 속에까지 심어 주신 따뜻한 감사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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