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3-08 06:58
[나삼진목사의 고신역사 아카이브] 14. 복음병원의 설립과 고신의 사회적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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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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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14. 복음병원의 설립과 고신의 사회적 영성

해방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채 안정되기도 전에 소련군의 지원을 받는 북한의 침공으로 1950년 6월에 한반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인민군은 사흘만에 서울을 점령했고, 계속 남하하여 두달만에 낙동강 이남을 제외한 전국을 점령했다. 임시 수도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30만이던 인구가 100만이 넘었을 정도였다. ‘국제시장’이 성황을 이룬 것도 그 시기였다.

중공군 개입과 맥아드 철수설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해방 후 첫 미국 유학생으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유학을 간 전영창 선생은 웨스턴신학교에 편입해 공부하던 중 전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되자 졸업을 앞두고 귀국을 결심하였다. 그는 게리 드윗 목사가 모금해 준 미화 5천 달러와 미국개혁교회(CRC)로부터 매월 500달러의 구호금 지원을 약속을 받아 귀국했다.

그는 일본 고베신학교 유학 중 알게 된 선배 한명동 목사를 만났고, 그를 통해 초량교회 한상동 목사를 소개받아 함께 제3육군병원에 근무하던 장기려 박사를 만났다. 그들은 운영비 확보와 미군의 약품 지원 약속을 설명하고 구호병원을 설립하기로 뜻을 함께했다.

이들은 1951년 6월 21일에 3영도교회 별관에서 공터 300평에 천막을 치고 복음진료소를 시작했고, 이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 되었다. 복음병원의 구호는 한국전쟁기 고통당하던 사람들에게 무료진료와 사랑의 실천으로 전쟁의 혼란속에서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고, 장기려 박사는 이후 평생 복음병원에서의 진료와 운영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다.

그들은 ‘대한기독교경남구제위원회’를 설립하여, 제54회(1951. 3. 6-8) 경남노회에서 이 단체를 승인해 노회 산하기관이 되었고, 4월 29일 주일에 일제히 헌금하여 구제회로 보내게 하였다. 이 기구는 미국개혁교회의 공적인 원조를 받는 통로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고신교단이 법인 인가를 위해 복음병원을 고신교단에 편입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설립 때부터 경남노회의 인가를 받은 산하기관이었다. 이 단체는 경남(법통)노회 소속으로 있었다가 제60회 경남(법통)노회(1954. 3)의 결의로 찬송가 간행사업, 주일학교 공과 편찬, 지방위원 사업 등과 함께 총노회로 이관했고, 제3회 총노회(1954) 이후 고신교단에 속하게 되었다. 1967년에 법인이 설립되면서 복음병원은 ‘명목상으로’ 학교법인의 수익기관이 되었다.

복음병원 설립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려는 고명길 목사의 시도가 있지만, 병원의 설립은 전영창 선생의 자본, 한상동 목사의 신앙, 장기려 박사의 의술이 하나가 된 것이라 보는 것이 적확하다. 한국전쟁 기간에 자선병원으로 시작된 복음의원은 1954년 고려신학교가 광복동 교사에서 송도로 이전할 때 함께 부산 송도 지금의 부지 13,000평을 확보하여 병원과 고려신학교를 신축, 이전하였다.

장기려 박사는 복음병원을 중심으로 고신교회와 평생 동역하였고, 생애 마지막까지 고신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신앙을 가졌던 그는 한상동 목사를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생각하고, “그의 관용의 신앙을 앙모하면서 살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우찌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 신앙의 영향을 받고, 함석헌과의 깊은 유대로 고신교회의 신앙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의 진료, 병원 운영,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 농어촌 의료 봉사를 통한 사랑의 실천은 한결같았다. 1979년 “실제적이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설립”에 대한 공적으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는데, 그의 정신은 고신교회의 사회적 영성 형성에 기여했다.

고신교회는 개혁주의 신학을 표방하지만, 신학적인 보수성과 함께 지역적인 보수성을 함께 가지고 있는 편인데, 뜻밖에 사회적인 영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만열 교수는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50주년 기념 강연에서 고신교회 출발에 신사참배 반대투쟁 인맥과 한국교회 절제운동 인맥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은 교회사를 한 사람으로서 이를 아주 중요시한다고 했다. 그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운동에 고신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되어 있음과 고신 출신이 중요한 리더가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를 사회적 영성이라 할 수 있다. 고신교회의 이러한 영성은 이약신 목사와 장기려 박사의 박애주의 정신, 송상석 목사의 절제운동, 그리고 이근삼 박사의 칼빈주의 문화관이 어우러진 것이라 하겠다.

영성신학자 게리 토마스(Gary Thomas)는 그의 책 Sacred Pathways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기질이 있고, 사람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름을 아홉 가지로 정리했다. 그중 하나가 박애주의 영성인데, 이 영성의 소유자들은 이웃을 돌봄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장기려, 손양원, 이약신 목사 등은 박애주의 영성의 소유자들이라 할 수 있다.

손양원 목사의 원수 용서와 사랑은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장기려 박사의 복음병원 사역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복음병원의 경영적 필요나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도 가난한 환자의 치료와 돌봄이 우선이었다. 또 그가 시작해 오늘의 국민건강보험의 모델이 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이나, 이약신 목사가 설립한 예도의원과 희망원도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는 이웃 사랑의 실천 현장이었다. 이약신 목사의 경우 딸 이효재 교수가 사회학을 공부하고 독신으로 한국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대모가 된 것이나, 사위 이봉은 장로가 오랫동안 무료진료를 한 것은 박애주의 영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것이다.

고신교회는 설립기부터 복음병원만 아니라, 신망애양로원(한영세), 인애원(조수옥), 소양보육원(지득용), 무궁애학원(박재석) 등 여러 평신도들의 사회복지 사역, 성진노회의 나환자 사역, 나환자들을 위한 영광신학교 운영 등 사회봉사 사역이 깊고도 넓었다. 『고신교회 20주년 기념화보』(1971)에는 16여 처 사회복지시설을 직업 소개하고, 한부선 선교사도 30여 처의 사회복지시설을 언급하며 이들의 사회봉사 사역에 주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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