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4-19 21:12
[나삼진목사의 고신역사 아카이브] 22. 총회 승격 기념 김영진 선교사 대만 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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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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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22. 총회 승격 기념 김영진 선교사 대만 파송

1952년이 대한예수교장로회총노회 발회로 고신교회 역사의 공식적인 시작이라면, 1956년은 고신교회 초기 역사에서 함께 중요하다. 1956년은 고려신학교 설립 10주년을 맞아 8년 동안의 광복동 시대를 마감하고 송도 시대를 열었으며, 총노회가 총회로 승격한 해이기 때문이다. 경남(법통)노회가 중심이었던 고신교회가 이 시기에 비로소 전국적인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늘날 고신교회는 제71회(2021) 기준으로 세계 56개국에 492명(258세대)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데, KPM의 선교가 한국의 여러 교단들 가운데서 모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이 기초가 되었고, 파송교회의 기도와 후원, 선교사의 헌신, 그리고 KPM 선교행정이 어우러진 결과일 것이다.

고신교회는 진리운동 10년만에 제6회 총회에서 김영진 목사(1920-2001)를 대만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고신교회는 제4회 총노회에서 선교부를 설치한 이래 꾸준히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제6회(1956) 총노회에서는 총노회를 총회로 승격하고, 이를 기념하여 제2영도교회를 시무하던 김영진 목사를 대만선교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한 것이었다. 한부선 선교사의 조언에 따라 중국의 공산화로 입국할 수 없었던 중국 대륙을 내다본 조처이기도 했다.

김영진 선교사는 1년 후 제7회 총회(1957. 9. 17)에서 90여 명의 총대가 참여한 가운데 선교사 파송식을 가졌는데, 박손혁 목사가 기도하고, 남영환 목사가 ‘보내시는 성령’(행 11:19-26, 13:1-5)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고, 한상동 목사가 권면하고, 기념품을 증정하고 통성기도 후 황철도 목사가 축도했다. 이 파송예배는 KPM선교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파송식을 한 후 출국을 준비하던 중에 신학생 시절 제1회 수양회를 도우며 SFC 형성에 기여하였던 SFC에서 환대를 받았다. 1957년 12월에 모인 제14회 동기수양회에서는 ‘우리의 살 길’을 주제로 하였고, 수양회 하루를 비워 김영진 선교사가 ‘우리의 살 길’, ‘나는 이렇게 가련다’ 두 차례 강의를 했고, 선교사 환송회도 가졌다. 저녁집회도 ‘우리의 살 길은 선교에 있다’고 정하고, 오종덕 목사와 한상동 목사가 학생들의 마음에 선교의 불을 붙였다. 이는 고신교회 첫 선교사 파송이 교단적으로 얼마나 큰 경사로 여겼던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1958년 5월 13일 미국 에베레트 기선회사 소속 존 위트맨호(John B. Waterman)호를 타고 부산항 제3부두에서 전국교회에서 온 성도들의 환송을 받으며 임옥희 여사와 만 5세의 딸 란나와 함께 대만으로 출국했다(김영진 회고록).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해방 후에는 회개운동과 교회쇄신운동이 고신교회의 중심이었는데, 총회 승격 기념으로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여 해외에서 개혁주의 교회 건설에 힘쓰게 되었다.

김영진 선교사는 1939년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한 재원으로 제3금융조합(중소기업은행)에 근무하던 영도교회 집사였고, 그러한 연고로 한명동 목사의 각별한 사랑과 지원을 받았다. 그는 진해 신학강좌에 참여한 후 1946년 9월 20일 고려신학교 개교와 함께 입학, 예과 2년 본과 3년 과정을 마치고 홍반식, 이근삼, 오병세 등과 함께 제5회로 졸업했다. 그는 졸업하기 직전 1951년 제2영도교회에 부임하였는데, 그 교회는 모교회 영도교회가 영도복음화의 이상을 갖고 제2, 3, 4영도교회로 분립한 교회들 중 하나였다. 부인 임옥희 여사도 고려신학교에서 공부한 제8회(1954) 졸업생이었는데, 부부는 평생 선교사로서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그가 고신교회의 첫 선교사로 파송될 때는 교단적으로 선교 경험이 전혀 없었고, 교단의 지원도 미약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어야 했다. 김영진 선교사는 대만에 도착하여 타이페이에서 80km 떨어진 신죽현에 본부를 삼아 33년 동안 선교를 계속했다.

김영진 선교사 평전에는 그의 대만 선교를 다섯 시기로 나눈다(오윤표). 제1기 개척기(1958-62)에 일본어 사용과 언어 연수, 남문교회 설립, 시각장애인 선교, 선교관 건립, 객가어 방송 선교, 농촌전도소 개설, 신학연구반 설립, 학생수양회 개최와 다양한 설교사역이 이루어졌고, 제2기(1963-69)에 죽동교회, 신죽교회, 화원교회 설립, 타 선교단체와 협력, 칼빈연합신학원 설립이 이루어졌다. 제3기(1970-75)에 중역교회, 충효교회, 남항교회 설립, 유환준 선교사 증원, 대만개혁종장로회 제2회 구회 설립, 제4기(1976-82)에 도원교회 설립, 기독교 개혁종신학교 설립, 제5기(1983-90)에 이병길 선교사 증원, 영신교회 설립, 현지교역자 양성, 총회선교부 총무 겸임 등이 이루어졌고, 정년으로 1990년 은퇴하고 첫 원로선교사로 추대되었다.

그는 33년간 대만선교사로 재임하며 신죽현을 중심으로 남문, 죽동, 신죽, 화원, 중포, 충효, 남항 등 일곱 교회를 개척하여 건실한 교회로 성장시켰다. 또 개혁신학연구반, 칼빈연합신학원, 기독교개혁종신학교를 설립하였고, 개혁종장로회 제1, 제2노회를 조직하고 은퇴하였다. 선교의 전과정을 거쳐 현지지도자에게 이양한 경우는 당시로는 한국 선교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다섯 살 때 대만으로 건너갔던 그의 딸 란나는 대만에서 고등교육까지 받고, 1979년 김한중과 결혼하고 1991년 C국 선교사로서 고신교회 최초로 2세 선교사 시대를 열었고, 외손 김상원(2013, 부산신흥교회 파송)은 YWAM 싱가포르 대표로 사역, 3대 선교사 가정을 이루었다.

김영진 선교사의 양육을 받았던 대만인 진정홍은 한국으로 유학을 와 고려신학대학원 제37회로 졸업하고, 김 선교사가 목회하였던 신죽교회를 담임하다가 2022년 1월 은퇴했다(김한중 증언). 선교에서 현지 지도자들에게로 이양이 한 세대에서 이루어진 것은 해외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들다. 회고록 ‘선교지 대만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총회출판국, 1992)을 남겼다.

1974년에는 유환준 선교사가 대만선교사로 파송되어 힘써 선교하고 2001년 정년 은퇴했는데, 남항교회를 비롯한 일곱 교회를 개척하였고, 모세오경, 사도행전, 로마서, 계시록 등 주석 9권을 비롯한 16권을 저술하였다. 이 두 선교사의 대만 선교는 참으로 모범적인 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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