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6-01 10:47
[나삼진목사의 고신역사 아카이브] 27. 박윤선 교장과 송상석 목사의 법정 소송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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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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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27. 박윤선 교장과 송상석 목사의 법정 소송 논쟁

제6회 총회에서 박윤선 교장은 회원 호명이 끝나자마자 총대권 탈퇴를 선언하였고, ‘목사는 노회 속한 바 총회에서 탈퇴를 운운한 것은 잘못’임을 확인하고 이를 취소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둘째날 임원 선거가 끝난 후 “개혁운동 10주년을 맞아 총회로 출발함에 있어서 과거 10년을 회고하고 잘못된 것을 시정하자”며, 예배당 쟁탈 문제, 교회 질서에 대한 문제, 기독교보에 대한 문제, 신학교에 대한 재정 문제 등의 시정을 요구했다.

이에 회원들이 통성으로 기도하고, 한상동 목사가 해명한 후 회무를 계속했는데, 네 가지 모두가 총회적인 과제였지만, 예배당 쟁탈 문제와 기독교보 문제는 송상석 목사가, 신학교 운영과 재정 문제는 이사장 한상동 목사가 주된 타깃이었다. 이는 이사회가 학교 운영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인데, 총신의 경우도 1960년대 말까지 교수 월급이 두세 달씩 밀리곤 했던 당시 한국교회의 현실이었다. 경기노회 총회의 미온적인 태도에 총대들이 조퇴로 항의하였다.

총회 후 박 교장이 1957년 2월에 교장직을 사면하고 상경하여 개혁신학원을 설립하면서 고신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파수군’ 3월호(61호)에는 ‘우리의 걸어갈 길’과 ‘나의 걸어가는 길’을 발표하며, 소송문제 논쟁이 촉발되었다. 박윤선 교장은 교회쇄신운동 과정에서 덕을 세워야 하며, 소송에 가담하는 일은 고린도전서 6:1-7을 위반하는 교리적인 문제임과 예배당 건물 쟁탈전에 가담함의 해독을 지적하며 소송에 가담하는 것의 불가함을 네 가지로 지적했다.

송상석 목사는 반박의 글을 6월호(63호)에 ‘교회 소송문제 재검토(1)’를 발표했는데, 자신이 교회소송 문제에 대한 대표격이 되어 지난 6, 7년 동안 ‘우리 진영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무책임한 비난과 공격을 받았’으며, ‘서로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조장시키는 일’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회 재산의 소유권은 총회나 재단이 아니라 교회에 있음을 지적하며, 경남노회가 다섯 차례 결의 내용을 열거하며, 박윤선 교장의 글이 ‘진리를 바로 세우는 논쟁’이기보다 ‘시비를 하기 위한 시비’라 했다.

송상석 목사는 7월호(64호)에 ‘교회소송 문제 재검토(2)’를 발표, 총회측의 명도 요구에 대한 응소 동기를 설명하고, 쯔빙글리와 칼빈의 경우와 역사적으로 한국교회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가를 제시한 후, 헌법, 웨스트트민스터 신경, 성경으로 반박하고, 진리와 법, 건덕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필사적인 희생의 댓가로 다른 교회들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송상석 목사의 두 글에 대해 박윤선 목사는 다시 8월호(65호)에 ‘교회소송문제 재검토(제63, 64호)에 대한 대답’을 발표하고, 신앙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상대방 보다 우수한 신덕을 가져야 회개운동을 할 수 있다’고 전재한 후, 자신은 모든 소송을 다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와 신자, 교회와 교회의 소송을 반대한다고 했다. 고려파가 총회파가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받았음을 상기시키고, 깨끗한 입장을 취해 한국교회 역사상 모본을 보이자고 했다.

송상석 목사는 9월호(66호)에 ‘교회 소송문제 재검토에 대한 박윤선 박사님의 대답에 대한 대답’과 ‘교회 소송문제 재검토(3)’ 등 두 편을 발표했는데, 후자는 일곱 가지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박윤선 목사는 이후 다시 응답하지 않아 박윤선 3회, 송상석 4회의 격렬한 소송 문제 논쟁은 끝이 났다. 이 문제는 제7회(1957) 총회에서도 뜨거운 감자였는데, 소송문제에 대한 박윤선 교장의 ‘연구 발표’를 듣고 송상석 목사의 ‘답변 시간’을 가졌다. 송상석 목사는 이 논쟁 후 1958년 1월에 진주성북교회 재판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화해제안서를 발표했다. 전국적으로 파장이 있었던 소송 문제와 이 논쟁으로 고신교회와 두 사람 모두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 소송문제 논쟁은 고신교회 역사상 최초의 신학 논쟁이었고, 가장 치열했던 논쟁이었다. 이 논쟁은 박윤선 교장이 고려신학교를 떠나있던 기간에 일어났지만, 박윤선 교장도 고려신학교도 어려움이 있어, 두 신학교의 합동 형식으로 박윤선 교장은 1957년 10월에 복귀했다.

그렇지만 박윤선 교장이 제기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고, 2년 후 1959년 12월 네덜란드 자유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을 위해 출국,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 머물며 보완하고 영어로 번역해 제출하였으나 받아들여지 않아 이듬해 5월에 귀국하였다.

박윤선 교장이 귀국 후 7월에 스푸너 선교사 환송 때에 주일성수 문제가 발생하였다. 사실 그 일은 불가피했던 일이었고, 박윤선 교장은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신교회 성도들이 주일에 버스도 타지 않았던 시절에 교장이 공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 총회파에서 ‘고려신학교 교장도 별 수 없네’라 공공연히 비난했다.

그렇지만 박윤선 교장은 스스로 꺼릴 것이 없는 양심의 문제에 대해 사과할 수는 없었고, 이사회의 결정을 양심에 대한 강요로 받아들여, 9월에 고려신학교를 14년 만에 떠났다.

당시 한상동, 한부선, 남영환 목사 등이 그를 다시 모시여 여러 노력을 했지만, 송상석 목사의 비협조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고려신학교를 떠난 지 10년 만이던 1970년 개강집회 강사로 왔고, 총회(제20회)에서는 신학교 교수 영입위원으로 한상동, 송상석 목사를 선정하여 재영입을 추진했지만, 다시 복귀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법정소송 문제의 후유증이었다.

서영일이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신학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한 ‘박윤선의 개혁신학연구’에서는 그가 가르친 신학교를 기준으로 ‘망명 신학자’(봉천신) 49면, ‘고려파 교회의 신학자’(고신) 81면, ‘한국교회의 스승’(총신) 20면, ‘한국교회의 개혁자’(합신)로 77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는 고신측이 환원한 후 1963년에 총신 강사로 가르쳤고, 1964년 한 해 동안 교수회장이었다가, 1967년부터 1974년 정년 은퇴 때까지, 이후 5년 동안 미국에서 주석 집필에 힘을 쏟아 1979년에 성경주석 전질을 완성, 출판감사예배를 드렸다. 1979년에 다시 총신 대학원장으로서 2년간 총신에서 가르쳤지만, 교권에 대항하며 1980년 설립된 합동신학원 원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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