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8-02 21:58
[나삼진목사의 고신역사 아카이브] 34. 1960년대, 1970년대 고신교회 문서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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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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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34. 1960년대, 1970년대 고신교회 문서운동

고신교회가 한국장로교회의 소수파로서 교회쇄신운동을 전개할 때 신문이나 잡지 등 문서운동은 그 중요한 수단이었다. 고신교회 문서운동은 초기 ‘면려청년’, ‘파수군’, ‘기독교보’, ‘진리운동’ 시리즈가 있었지만, 승동측과 합동 후 환원하면서 ‘파수군’을 잃었고 이후 잡지를 갖고자 했다. 고신교회 역사에서 총회가 직접 힘을 쏟은 것은 신학교에 이어 문서운동이 가장 중요한 사역이었다. 고신교회 문서운동은 외적으로는 한국교회를 상대로 교회쇄신운동의 신앙과 정신을 제시했고, 내적으로는 고신교회 성도들의 신앙과 생활의 일치를 추구했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고신교회 문서운동은 ‘개혁주의’, ‘고신대학보’, ‘개혁신앙’으로, 1980년대에 ‘월간고신’으로 이어졌다. 한상동 목사가 미국을 방문할 때 문서운동 후원을 생각하기도 했다.

‘개혁주의’와 ‘개혁신앙’. 1960년대는 ‘개혁주의’가 고신교회 문서운동의 주된 흐름이었다. 고신교회는 1963년 제13회 환원총회를 마친 후 10월에 ‘파수군’을 대신할 ‘개혁주의’를 창간했다. ‘개혁주의’는 고려신학교가 발행하고, 홍반식 교수가 편집 대표, 박손혁, 이근삼, 오병세 교수가 편집위원이었고, 양승달 전도사가 유학을 떠나기까지 실무 작업을 담당했다. ‘개혁주의’는 매월 30여 면의 지면으로 1973년까지 발간되었다. 1969년 9월호부터 연말까지 4개월 동안은 ‘개혁세계’라는 제호를 사용하기도 했다. ‘개혁주의’는 1973년 9월호까지 10년 동안 59호를 발행하고 중단되었다. 이 시기에 발행된 ‘개혁주의’에서 고려신학교 중기의 신학을 찾아볼 수 있다. ‘개혁주의’가 종간된 후 한명동 목사가 후원회장을 맡아 ‘개혁신앙’ 이름으로 새롭게 편집하여 발간을 시도했지만, 두 번을 넘기지 못하였다.

‘고신대학보’. ‘개혁주의’가 종간되면서 안정적인 정기간행물을 갖는 것은 교단 지도부의 숙제였다. 이에 고려신학대학에서 1974년 6월 ‘교회생활’을 발간하기 시작했고, 1974년 9월 19일에 ‘고신대학보’를 문화공보부에 등록하고 교단지로 발간하였다. 당시는 반정부 학생운동이 활발해 신문과 잡지 등 언론이 엄격하게 통제받던 시기여서 정기간행물 등록이 쉽지 않았다. 이에 대학에서 편집, 발행하지만 사실은 고신교회가 평신도들에게 유가지로 판매하는 형태였다. 고신교회 교단지는 ‘교회생활’을 거쳐 ‘고신대학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행되기 시작하였다. 이 잡지는 ‘고신대 신문’의 후신인 신문 ‘고신대학보’와는 구별되는 잡지였다.

교단지 ‘고신대학보’에 ‘고신발언’이라는 코너가 있어 교단 출판, 교회교육, 교단 제2세대 비전, 타 교단과의 교류 문제 등에 젊은이들의 발언이 실렸고, ‘초점’에서는 ‘개혁신자 생활 주변의 부조리 청산’을 시리즈로 다루기도 했다. ‘고신대학보’는 매월 결호가 없는 정상적인 발행이 목표였다. 그러나 고려신학대학이 신학과와 대학원 과정의 신학연구과 학생만으로 운영이 빠듯한 형편이어서 교단지 ‘고신대학보’에 재정을 투입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1977년 6월호부터 김동철 목사가 운영인을 맡아 운영과 광고의 책임을 맡았다.

‘개혁신앙’. 교단지로서 ‘고신대학보’라는 제호가 적절하지 않아 이를 변경하려는 노력을 하던 중 1977년 12월호부터는 ‘개혁신앙’으로 등록해 발간하였다. 고신대학장이던 오병세 학장이 발행인이 되고, 오랫동안 교단 문서운동을 담당하였던 문인 심군식 목사가 편집인으로, 김성인이 편집장을 맡았다. 창간호에는 오병세 학장의 창간사 “개혁신앙의 창간에 즈음하여”가 실렸고, ‘기독교 교육에 대한 일반론’을 특집으로 하였다. 아울러 수필, 논단, 특별기획으로 성탄절에 대한 이모저모, 교회 탐방, 평신도를 위한 교리해설, 교단 소식, 대학 소식 등을 담았다. ‘평신도 코너’라는 몇 가지 평신도를 위한 연재가 이루어졌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와 국가’, ‘종교개혁운동과 평신도’, ‘가정교육’, ‘군선교’, ‘총회에 대한 기대’ 등이 관심을 받은 특집 주제였다. 유학을 마치고 막 귀국한 이보민 교수의 “1980년대를 살아가는 개혁신앙인”이나 대학원생 이상규의 “역사에의 진리”(1980. 5), “한국 기독교를 반성한다”(1980. 7) 등의 기고와 ‘개혁신앙 칼럼’은 관심을 끌었다.

‘개혁신앙’은 1980년 1월호에는 국기경례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전원호 전도사의 주일성수에 관련된 ‘국기경례 문제 일고’라는 논설이 교단정신에 문제가 된다고하여 김성인 편집장이 사임해야 했다. 세 달 후 최수경이 편집장으로 선임되어 편집이 정상화되었지만, 바로 1980년 8월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정책으로 신문과 잡지들이 폐간될 때 27호를 발간한 후 폐간되었다. 납본 실적이 문제였지만, 제호가 신군부들의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월간고신’. ‘개혁신앙’이 폐간되면서 고신교단은 교단지 정기간행물을 속간하기 위해 총회교육부장 박정덕 목사가 앞장서 노력했다. 제30회 총회에서는 범교단적으로 ‘개혁신앙’ 복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두 차례에 걸쳐 등록신청서를 제출한 끝에, 1981년 7월호로 ‘월간고신’을 창간할 수 있었다. 유지재단 이사장 박창환 목사가 발행인, 교단 총무 민영완 목사가 편집인, 김동철 목사가 운영인, 편집 실무는 최수경이 맡았다.

‘월간고신’은 본격적인 평신도를 위한 잡지로 편집되었는데, 김동철 목사가 광고와 운영 책임을 맡았다. 초기 편집과 인쇄 수준을 위해 부산일보 출판국을 이용했으나, 경영난으로 서창수 목사가 편집인 겸 운영인으로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어 1989년 창간된 ‘기독교보’와 ‘월간고신’이 교단 내 경쟁 언론이 되었다. 서창수 목사는 3천 부 유가지로는 운영이 어렵다고 판단, 전국교회를 방문해 목회자의 협조와 직접 배달로 18,000부까지 독자를 늘였는데, 이 시기에 필자도 특집 기획위원으로 함께해 사정을 좀 아는 편이다. 그는 경영에 상당한 성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제45회(1995) 총회 석상에서 당시 총회장과 이사장의 강력한 탄핵을 받았고, 전국장로회연합회가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을 건의하면서 ‘기독교보’와 ‘월간고신’이 통합, 고신언론사가 출범하면서 얼마 후 타의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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