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08-16 22:04
[나삼진목사의 고신역사 아카이브] 36. 송상석 목사의 면직과 경남(법통)노회의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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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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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36. 송상석 목사 면직과 경남(법통)노회의 분열

한국교회 성장기였던 1960년대에 고신교회는 환원과 이후 신학교 파동 등 후유증을 겪으면서, 고등교육의 발전을 이루었다. 1970년 제20회 총회는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의 청원으로 고려신학교 정규대학 인가를 추진하기로 하고 위원은 임원회에 맡겼다. 합동측 총회신학교가 예과 2년제를 유지했으면서도 총회신학대학으로 인가를 받은 것에 대한 자극도 있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칼빈학원(대학) 설치 15년 만에 고려신학대학 인가가 났다. 고신교단은 1971년 1월 12일 고려신학대학 인가를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고, 정부 인가 대학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대학 인가는 수준에 맞는 교사를 필요로 해, 본관 건축을 추진하였는데, 국내 교회의 헌금에만 의존하기 어려워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지원 혹은 차관을 모색하였다.

네덜란드 자유대학교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근삼 교수는 후배들이 네덜란드 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 허순길, 차영배, 박성복 등이 깜뻔신학교에서 공부하였고,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고신교회에 꾸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고신교회는 네덜란드자유개혁파교회와 교류하면서 1969년 자매관계로 승격되었고, 1971년 두게스 교수와 반 구루프 교수가 내한해 특강을 하였다. 그들은 귀국한 후 인상기를 교단지 일간 신문에 개제해 개혁교회 신자들이 한국의 고신교회를 널리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시기 고려신학대학 교수회에서는 교수 파송, 보조금 증액, 본관 건축 경비 지원을 요청하도록 결의했다. 1971년 연말에 교장 한상동 목사를 친선방문으로 초청하였고, 그는 3월 20일부터 5월 36일까지 두 달 동안 네덜란드에 머물면서 고신교회를 널리 소개하면서 개혁파교회 총회에 고려신학교 건축 지원을 요청해 총회가 이를 결의하였다. 한상동 목사는 제22회 총회에 네덜란드개혁교회의 지원 사실을 보고하고, 총회도 신학교 건축 모금을 결의하였다.

제22회 총회에는 1968년에 취임했던 송상석 목사의 이사장 4년 임기가 종료되었는데, 그는 총회 임기와 문교부 등록 임기 임기의 차이를 가지고 총회 후에 ‘법적 이사장직’을 주장하게 되면서 업무 인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학대학 건축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싶지만, 그 뜻을 알 수 없고, 이로 인해 이사회는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불행한 일이 생겼고 고신교회는 5년만에 다시 분쟁의 격랑에 휩쓸렸다. 그 과정이 지루하게 진행되면서 경북노회는 제24회(1974) 총회에 ‘송상석 목사 비행에 대한 처리건’을 헌의하였고, 총회는 특별재판국을 설치해 12월 4일 목사 면직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송상석 목사는 고신교회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고 총회장을 네 차례 지낸 분에게 목사 면직이 선고되면서 이를 과도한 시벌로 판단해 그를 따르던 경남(법통)노회가 행정을 보류하고 총회를 이탈했다. 총회측을 지지하는 교회들은 경남노회 이른바 ‘정화노회’를 조직해 제25회 총회에 총대를 파송하였다. 1960년대 후반 이후 한국교회는 급격한 성장기였다. 민족복음화운동의 물결이 일던 시기에 고신교회는 교단 내 분쟁으로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었다.

고신역사 아카이브는 송상석 목사와 교수들과의 갈등 및 그후 교단 분쟁에 관련된 문서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학우회 호소문(68. 1. 16), 결의 및 해명서(68. 12. 21), 대학 학우회 일동 성명서(69. 1.), 대학부 교수와 신학부 일동 사과서(69. 1. 22), 고신동창회 긴급 소집 통지서(69. 2. 21), 동창회 진정서(69. 3. 18), 송상석 목사 소원 및 재심 청구에 대한 답변(72. 11. 27 문서 답변, 연대 미상), 취지문: 화란 31조파 교인들의 헌금을 욕되게 할 수 없다(73. 6. 13), 고려파가 서 있는 역사적 입장(석원태, 73. 9. 18), 송상석 목사 변론요지서(73. 11.), 사문서 위조와 범죄행위에 대한 호소문(73. 12. 17), 경남(법통)노회 100회 축하 행사 및 기념사업 재심 청구에 대한 답변서, 경남노회 제100회 초청장(74. 8. 30), 제100회 노회 선서문(74. 8. 29), 제24회 총회 촬요(74. 9. 25), 특별재판국 판결문 및 죄증설명서 및 공고이유(74. 12. 7), 총회 특별재판에 대한 항변서(74. 12. 12), 특별재판국 지시에 대한 질의 응답(74. 12. 16), 송상석 목사 면직에 대한 해명서(75. 1. 27). 총회사무부 결의 통지의 건(75. 4. 3), 경남노회 평신도대회 준비위원회 초청장(75. 5. ), 경남노회 질의의 건(2종, 75. 6. 3), 경남노회 평신도대회 불참 지시(75. 6. 6), 합동 수도노회장 질의에 대한 답변건(75. 6. 6), 경남 평신도대회 불참 지시의 건(75. 6. 6), 일련의 사건들의 줄거리(75. 6. 6), 총회장과 각 노회장에 드리는 메세지, 평신도대회 순서(75. 6. 9), 평신도대회 준비위 취지문(75. 6. 9), 평신도대회 결의문(75. 6. 9), 경남노회 평신도 일동 건의서(75. 6. 9), 해명서(75. 6. 28), 특별재판국 판결문(74. 12. 7), 특별재판국장 해명서(75. 1. 27), 제25회 총회 촬요(1975. 9.), 성도간의 불신법정 소송에 대한 연구위원 보고(경기노회, 1975. 9), 법정소송과 종교재판(1976. 9. 10), 파수병의 절규(1976. 9. 10), 제26회 총회 촬요(1976. 9), 영접위원 보고(80. 9. 5), 하나되기 운동 소식(신문, 80. 9. 8) 등 38종이다.

송상석 목사는 면직된 후 소송문제와 관련된 논문과 사료들을 모아 ‘법정소송과 종교재판’(1976)을, 한국기독교 절제운동 사료들을 망라하여 ‘한국기독교절제운동사료집’(1979)을 출간했다. 그는 치밀한 성격으로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 학생 시절에 한국교회의 역사성있는 문헌 ‘한국기독교 50년 역사화보’(1934)를 편집, 출판한 바 있는데, ‘고신교회의 어제와 오늘’(1971) 역사화보에도 다수의 사진이 사용되었다. 송상석 목사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국교회, 절제운동, 고신교회, 법정소송 등 한국교회사 관련 상당한 사료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기독교대백과사전을 편찬했던 기독교문사가 설립한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으로 이관되었다.

당시 총회를 이탈했던 경남(법통)노회는 제32회 총회에서 합동이라는 방식으로 영입되었는데, 11월 16일 고신대학에서 총회장 서완선 목사의 사회로 학장 홍반식 목사가 ‘예수교회의 승리’라는 설교를 하고, 오병세 박사가 축사, 한명동 목사가 격려사를 하며 범교단적인 합동경축대회를 개최했다.


*링크를 연결하면 사진 자료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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