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2-10-16 23:22
[나삼진목사의 고신역사 아카이브] 45. 고신교회 선교의 성장과 KPM, 세계선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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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나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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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45. 고신교회 선교의 성장과 KPM, 세계선교대회

고신총회 세계선교회(KPM)은 오늘날 한국교회와 한국선교계에서 모범적인 교단 선교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고신교단이 한국교회의 유수한 교단들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지난 10년 동안 김종국, 박영기, 방도호 등 KPM선교사들이 세계선교사회(KMMF)의 상임회장 혹은 대표회장을 맡아 연이어 봉사하고 있는 것도 그러한 평가의 반증이라 할 것이다.

고신교회 선교의 역사는 진리운동 10년을 맞아 1956년 총회 승격 기념으로 김영진 선교사를 대만에 파송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고신교회 70년 역사 산책 22). 세계 최다 인구를 보유하고 있고, 같은 한자문화권으로 문화적인 친밀감을 가지고 있는 중국 대륙을 선교하고자 했지만, ‘죽의 장막’으로 입국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장차 중국 선교의 문이 열리기를 바라면서 한 조처였다. 이는 한부선 선교사의 조언처럼 미국정통장로교회 선교사가 대만에 파송되어 있어 협력 선교가 가능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영진 선교사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부산 제2공립상업학교(부산상고, 현 부산 개성고)를 졸업하고 부산제3금융조합(후일 중소기업은행)에 근무한 일이 있어 일본어를 자유롭게 사용했고, 선교지 대만도 해방 전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언어훈련 없이 선교지에서 의사소통과 설교가 가능했다. 이후 조병철(일본, 1972), 유환준(대만, 1973), 김용출(캐나다, 1974), 김소익, 이청길(일본, 1978), 김만우(1979, 미국), 도만기(1980, 스페인) 등으로 이어졌다.

고신교회 안에서 선교가 새롭게 불붙었던 것은 1980년내 중반 한국교회가 성장하면서 선교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고신대학 신학대학원 선교학회를 중심으로 선교에 대한 큰 관심이 일어나 선교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선교학회 주축 멤버들이 김종국(1983), 이헌철(1984, 이상 인도네시아), 유영기, 박영기(일본, 1985), 이신철(1986), 이상룡(1986, 네팔), 이정건(1989, 파라과이) 등이 졸업 후 선교사로 파송되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이 본격적으로 선교 훈련과 준비를 거쳐 파송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선교를 준비하는 선교사 후보생들을 위한 선교훈련원이 개설되어 제1기 훈련이 1988년 8월 1일부터 19일까지 3주 동안 개최되었다. 제1기 선교 훈련에서는 선교의 동기와 목적, 성경에 나타난 선교, 비교 종교론, 에큐메니칼 선교, 선교사의 삶과 사역, 제자훈련의 실제, 선교사의 경건생활, 아시아 선교의 과제와 전망, Morning Devotion, Extended Quiet time, 언어훈련, 선교지역 연구 등의 시간이 있었다.

이러한 선교의 열기와 선교사들의 급격한 증가는 미국의 한인교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교회가 1980년대에 접어들어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선교사들을 격려하는 세계선교대회가 미국의 한인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개최되었다. 1988년 7월 25일부터 30일까지 빌리 그래함 목사의 적극적 후원을 받아 시카고 휫튼대학 빌리 그래함 센터에서 제1차 한인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는 한국교회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여는 일이었다.

이 대회를 기점으로 북미주 한인교회에 주신 세계복음화의 지상명령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자 기독교 한인세계선교협의회를 창립하였다. 1992년에 제2차 세계선교사대회가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개최되었는데, 전호진, 김만우 목사 등 고신교회 출신들이 다수 조직위원으로 참여하였고, 238명의 선교사 가운데 고신교회 선교사도 다수 참가해 선교사들의 항공권 등 많은 경비를 재미총회 산하 여러 교회가 후원을 담당했다.

이를 계기로 제1차 세계선교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오늘날 매 4, 5년 마다 개최하는 KPM선교대회의 시작이었다. 1992년 8월 5일 발기회의 보고를 받고 세계선교협의회가 창립, 회장에 홍관표, 부회장에 조병철(일본), 임종수(미주), 김대양(유럽)이 선출되었다. 초기만해도 교포교회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고 선교사들이 함께한 형태로 운영되었다.

제2차 선교대회는 세계선교협의회(고신)의 주관으로 1994년 8월 4일부터 10일까지 시드니중앙장로교회에서 ‘성령, 세계, 선교’를 주제로 개최되었다. 대양주총노회와 미주총회, 유럽총회, 그리고 선교사들이 참가하였는데, 선교사대회, 선교세미나, 선교활동 보고, 찬양의 밤 등이 이루어졌다. 이 대회는 의욕이 커 한 주간 동안 진행되면서 대양주노회를 대표하는 시드니중앙장로교회가 적지 않은 부담을 져야 했고, 결과보고서를 준비했지만, 출판할 수 없었다. 이듬해 필자가 대양주주일학교연합회 교사강습회 인도차 방문하면서 담당자 변종무 집사에게서 사장되고 있던 자료를 넘겨받아 ‘제2차 세계선교대회 선교사들의 증언’ 보고서를 출판비를 지원해 출판해 준 바 있다.

제3차 세계선교대회는 1996년 7월 8일부터 11일까지 ‘21세기를 향한 세계선교’라는 주제로 부산남교회당에서 개최되었다. 네 차례 주제 강의와 70여 개 소그룹 모임이 있었고, 40여 명의 선교헌신자가 나왔고, 7개 항의 선언문이 발표되었다. 제4차 세계선교대회는 1998년 대만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IMF로 인한 국가적인 위기로 2년 연기되어 2000년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새 천년의 소망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주제로 경주 콩코드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이때 선교후원협의회가 창립되었다. 제5차 선교대회는 2005년 8월 경주에서 ‘변화와 성숙’을 주제로, 제6차 선교대회는 ‘참여와 도약’을 주제로 2010년 8월에 경주에서 개최되었다. 오늘날 선교대회를 앞두고 선교포럼을 개최하여 선교대회는 물론 선교의 방향과 정책을 다듬고 있다.

KPM(당시 총회선교부)은 ‘고신선교 40년’(1998)이라는 이름으로 고신교회 선교 역사를 정리한 바 있는데, 다시 고신교회 선교 60년의 역사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동안 미국 PCA선교부가 보유중이던 대전 선교기지를 선교부 총무 곽삼찬 목사 등의 노력으로 무상으로 이양받았고, 한 동은 보존하여 선교박물관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그 부지에 세계선교센터를 건축해 2010년 6월에 완공하여, KPM 선교의 본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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