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03-28 13:11
32- William L. Swallen (윌리엄 스왈른, 소안론 蘇安論)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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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nry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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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L. Swallen (스왈른, 소안론 蘇安論) 선교사- 189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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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론 선교사는 오하이오 주(Ohio) 말번(Marvern)에서 출생, 우스터 농과대학(College of Wooster) 출신으로 시카고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북장로교회 소속 목사로 임직 후 조선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평양 신학교 교수로 활동

했으며, 현재 성경 통신대학의 시초인 성경 통신강좌를 시작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를 비롯해 수많은 아름다운 찬송가를

작시하기도 했다. 1892년 조선(한국)에 도착했으며, 1901년에는 평양으로 거점을 옮겨 1932년 73세의 나이로 명예

은퇴할 때까지 평양을 무대로 전도 및 문서선교에 생애를 바쳤다. 1901년 합동공의회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에도

성경번역 작업에 참여하는 등 조선(한국) 선교에 공을 들였다. 최초의 조선(한국)인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가 소안론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192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킨 김익두 목사도 소안론

선교사의 집회에 참석했다 기독교 신자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안론 선교사는 어찌나 조선(한국)말을 잘했던지 특히 그의

‘영생’에 대한 설교는 당시 천하의 망나니였던 김익두를 사로잡아 그로 하여금 후에는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능력있는

부흥사로 쓰임 받게 할 만큼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안론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소속 선교사로 1892년 11월 입국 후 서울 선교부에 소속되었다. 이듬해 1893년 1월 관서

지방 개척 선교사로 임명받고 평양지방 선교사업에 집중하다가 나중엔 평양 주재 선교사가 되었다. 1894년에는 잠시

강원도 원산 선교부에 파송되어 순회전도에 몰두하면서 교육 활동에도 기여하였다. 1899년에는 다시 평양 선교부로

돌아와 숭실학교 관리 책임자가 되어 학교 발전과 교육선교에도 이바지 했다. 또한 소안론 선교사는 1901년에는 독노회

(獨老會)가 조직되기 이전,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長老會公議會) 초대회장으 로 피선되어 내한한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제하기도 하고, 선교지 활동상황을 점검하는 책임을 지며 교회행정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903년 1월에는 마포삼열

(Samuel Moffett) 선교사와 배위량(William M Baird) 선교사와 함께 평양신학교 개교에 힘을 모아 전도활동과 함께

본격적인 교육사업에 착수했다. 소안론 선교사는 1932년에 필생을 다해 선교사역에 매진했던 조선(한국) 선교를 마감하고

귀국한 조선(한국) 선교사역 초기에 큰 자취를 남겼다. 소안론 선교사가 안식년 차 미국에 갔다 오면서 사과나무 묘목 300

그루를 부산 항구에 내렸다. 대구에 있는 선교본부에 묘목 150 그루를 전달하고 대구 근방 기독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어

심게 하였다. 그리고 150 그루는 평양에 있는 선교 본부에 전달하여 평양 근처, 주로 황주에 있는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고

심게 하였다. 이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대구사과와 황주사과의 유래가 되었다. 그후에 우리나라 사과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고 종류도 개량하여 농산물 소득의 큰 몫을 차지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과가 소알론 선교사에 의하여 전해진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익두 목사가 결국은 학생자원운동(Student Volunteer Movement) 선교사인

소안론 선교사의 인도로 목사가 되었으니 거슬러 올라가면 Northfield와 DL Moody로 연결되니 이 얼마나 하나님의 섭리

하심인가? 소안론 선교사의 두 딸과 아들이 모두 이곳 Northfield Mt. Hermon 학교를 졸업하여 한국에 다시 2세 SVM

선교사로 와서 헌신했고 둘째 딸 걸투르드(Gertrude)가 또 다른 2세대 SVM 선교사해롤드 보켈( Harold Voelkel(한국명

옥호열) 숭실대 교수로 6.25 당시 종군목사로 흥산 철수시 수천명의 피난민의 목숨을 구했고,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수백

명의 포로를 주께 영접하고 이중 수십명이 목사가 되었으며 빌리 그래함, 밥 피어스(월드비전 창립자) 등을 한국에 초대하기

도 했다.)과 결혼하여 소안론 선교사 가족은 도합 200년이라는 시간을 한국의 복음화에 헌신하였다. 이들 부부사이에서

평양서 태어난  잭(Jack)은 휘튼(Wheaton), 프린스턴(Princeton), 풀러(Fuller) 신학을 나와 남미 콜롬비아(Columbia)

에서 30여년간 선교사로 헌신했고 지금은 Urbana InterVarsity의 본부 선교사로 섬기고 있으며, 그의 딸이 선교사로

있으니 4세대째 선교사로 헌신하는 “Die Hard” 선교사 가문이요 혈통이라 하겠다.      『계속』


박흥배 목사

안디옥 세계선교협의회 회장

왈브릿지 열방교회 담임목사

revpark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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