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09-18 12:39
[이응도목사 칼럼] 기억과 함께 울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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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sedMoon
조회 : 1,418  

기억과 함께 울다.(4)

요즘 필라 근교의 한인 청소년들에게 마약 문제가 심각한 현상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마약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연령대는 어려지고, 사용량과 정도에 있어서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의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의 마약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늘 생각이 나는 한 여학생이 있습니다. 꽃처럼 예쁘고 심성이 착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날 당시 이미 많이 무너진 모습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벌써 몇 년 전 일입니다. 그 아이와 상담은 제게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K는 늘 주목받는 아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예뻤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성품도 명랑하고 적극적이어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늘 바빴습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K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 볼만한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K에게 중요한 것은 친구들과의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친해진 또래 친구들... 인종과 관계없이 친하게 지냈습니다. K가 막 9학년으로 접어들던 시기였습니다. 하루는 친구가 파티에 초대했습니다. 친구의 오빠가 꼭 K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래들의 관심과 인기를 즐기던 K는 들뜬 마음으로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파티는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 자리에서 K는 처음으로 ‘동네 오빠’들이 무엇인가 금지된 것을 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무섭고 다른 한편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날 파티는 그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K는 다시 파티에 초대되었습니다. 역시 음악이 있고 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오빠’들은 지난 번처럼 술을 마셨고, 무엇인가 ‘기분이 좋아지는 금지된 것’을 했습니다. K는 그날 오빠들의 강권을 이기지 못해서 처음으로 ‘금지된 즐거운 것’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정신을 거의 잃었습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습니다. 아니 흐릿한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고, 정말 나쁜 일을 한 것 같았습니다. 너무 무섭고 부끄러웠습니다. 학교와 집 외에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한동안 숨어 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자 다시 그 친구들과 가까워졌습니다. 친구들이 어른들이 없는 집에 모여서 술과 마리화나를 할 때 자신도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고, 곧 능동적으로 마리화나를 경험했습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거야...’ ‘여기는 미국인데 뭐...’ ‘성장하는 과정일 뿐이야....’ K는 여러 가지 말로 자신을 합리화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수많은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파티에서 K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행위들을 서슴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는 점점 멀어졌고, 결석이 잦아졌고, 결국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출을 시도했습니다. 집에서 돈이 되는 물건들을 들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자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부모님은 K의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비로소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돌이키기에 정말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K는 첫날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잊지 못합니다. 평소에 자신에게 친절히 대하고 멋있게 보이던 오빠들이었습니다. 분위기에 취했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술과 기분이 좋아지는 무엇인가에 취했습니다. 훌쩍 어른이 되는 경험.... 잊고 싶었지만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를 따라다녔던 교회에서는 그런 것들을 죄라고 말했습니다. 더럽혀진 느낌, 죄인이 된 느낌, 헤어날 수 없는 진흙탕 속에 뒹굴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습니다. 외면하고 잊으려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K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누구도 자신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K는... 그 친구들과 오빠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나쁘고 더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다시 자신의 의지로 그런 삶을 선택했습니다.

K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출과 자해를 시도했고, 결국 정신과 치료를 받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왜 자신을 해치는 일을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더럽혀진 자신을 용서할 수 없고, 죄인이 된 자신을 벌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잊으려고 할수록 기억은 더 또렷해지고, 외면하려 할수록 더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K는 치명적인 상처로 남은 기억들을 모아서 자신의 모습을 재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수치와 분노, 눈물과 후회가 함께 있습니다. 그런 기억들을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죽도록 미웠습니다. 이미 더러워진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없는 어떤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파티는 계속되고 아픈 기억들은 켜켜히 쌓여가고 K의 여린 삶을 더 깊은 수렁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흔적들에 대한 기억으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들, 후회해 봐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사건들, 수치와 눈물과 분노와 한숨들.... 잊으려고 애쓰지만 잊지 못해 몸부림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억을 벗어나려 오히려 자신을 학대하는 우리들, 어떻게 할까요? 우리에게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길은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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