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6-11-26 12:56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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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Hese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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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고신영성 회복,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
이 글은 김순성 교수가 지난 10월 27일 고려신학대학원 대강당에서 있었던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본인이 행한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11월 24일 자로 재 작성한 것이다.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00 

고신영성의 특징과 개혁주의 신학적 조명과 평가

 I. 들어가는 글

금년은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8.15 해방직후 1946년 개교된 고려신학교 설립은 한국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강요로 신앙의 근간이 위협당할 때, 장로교회 내에서 그에 맞서 반대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소수 지도자들이 해방과 함께 출옥하면서 그 신앙운동의 연장선에서 설립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장로교회 내에서 전개된 신사참배 반대운동은 십계명 1계명과 2계명이 근본적으로 위협받는 역사적 정황 속에서 배태되어 순교적 삶으로 꽃을 피운 바른 신앙, 바른 영성운동이었다. 해방 후 이 운동은 장로교회 내에서 소위 고려파 운동1)으로 불리는 교회쇄신 운동 즉, 바른 교회운동으로 발전되었고, 고려신학교는 그 진원지 역할을 감당했다. 이 운동에 나타난 영성이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고백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신영성2)은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한국인의 신앙과 정서로 꽃피운 가장 한국적이면서 성경적인 한국적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역사적 고신영성은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주신 선물이며 따라서 한국교회가 공유해야 할 뿐 아니라, 이 시대에 다시 회복되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고려파 운동에 나타난 신앙과 영성이 그 내용과 질에 있어 한국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동안 한국교회에서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첫째, 당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한 무리들이 소수파이었기에 신사참배에 참여한 다수 기득권 주류세력들이 교권으로 이들의 쇄신운동을 거부했기 때문이고, 둘째, 1946년 9월부터 1952년 9월까지 6년간 소위 고려파 운동이 대한예수교장로회 내에서 존재하다가 이후 경남노회(법통)가 총회에서 축출되어 고신교회가 독립하게 됨으로써(한국장로교 1차 분리) 그 운동이 대한예수교장로회 내에서 단절되면서 그 유산이 고신교회의 전유물로 오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고려신학대학원 개교 70주년을 맞이하여 본고에서는 초기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전개된 고신영성의 특징 및 의의를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고신영성이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한국적이며 성경적인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임을 밝히고, 이후 70년 역사에 나타난 고신영성의 발자취에 대한 개괄적인 고찰과 함께 고신영성이 오늘의 고신교회와 한국교회에 주는 의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전망하고자 한다.

 II. 펴는 글

1. 영성과 신학과의 관계

기독교 영성이란 간략히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반응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믿음을 전제하며, 여기에는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에 관한 객관적, 교리적 차원, 그 하나님을 주체적으로 자각하고 인식하는 인지적 차원, 그 결과 윤리적 삶으로 나타나는 실천적 차원이 포함된다. 두 번째 차원인 하나님에 대한 주관적 인식으로서의 하나님 체험이 좁은 의미의 영성이며, 넓은 의미에서 영성은 하나님의 영 안에서 살아가는 총체적 삶의 양식을 일컫는다. 이처럼 영성에는 신앙의 내용과 체계로서의 교리와 신조라는 지식적 요소와 초월적인 하나님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경험적 요소가 상호 연관된다. 여기에 신학과 영성의 관계가 대두되는데 영성이 신학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신학이 영성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물론 여기에 상호 영향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으로도 작용하기도 한다.3) 바른 신학은 영성을 포용하며 영성에 지식을 주며 영성을 유지한다.4) 반대로 바른 영성은 신학을 수용하며 신학에 생명을 주고 신학을 깨어있게 한다.

여기서 고신영성과 신학의 관계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먼저 주목할 것은 고려신학교가 설립되기 전, 신사참배 반대라는 영성운동이 먼저 존재했다는 점이다. 물론 당시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참여한 목사들이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된 평양신학교(1901년도 설립)에서 신학수련을 받았지만, 당시 신학은 보수 복음주의 성향의 초보 수준이었고, 교회 사역자 양성을 위한 성경학원 수준이었다. 이 점에서 선교초기 상황에서 한국장로교의 신앙과 영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신학교육이라기보다는 이후 일어난 평양대부흥운동(1907년)을 통해서였다고 보아야 한다. 즉 대부흥 사건 속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경험된 영성이 신학의 영향에 선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통해 형성된 고신영성과 개혁주의 신학과의 관계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해방 후 고려신학교의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신학자가 아니라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한상동, 주남선 두 목회자였다. 또한 고려신학교가 Calvin주의 신학을 표방하고 출범했지만 당시 신학수준은 지극히 미약했을 뿐 아니라,5) 그 시기 한국장로교회의 주된 관심사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는 정통 보수신학이었다. 따라서 당시 고려신학교 설립자와 교수진 그리고 학생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개혁주의 신학과 신조가 아니라, 고신영성이었다.6) 고려신학교의 신학을 논할 때 신학보다 고신영성에 먼저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공동체 영성형성의 세 요소

영성은 성경, 전통, 상황이라는 세 가지 요소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여기서 전통이란 성경을 해석하는 신학체계, 교회정치 형태, 예배방식, 리더십 등을 포함하며, 상황이란 해석자로서의 개인 신자와 신앙공동체가 처한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말한다.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과 인간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반응 간에 생겨나는 내재적 역동성은 단지 교회 내에서 신앙적, 전통적 요소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사회적 존재로서 세상 속에서 개인과 신앙 공동체가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들, 즉 경제,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 및 국제 질서 등과의 관계에서 야기되는 역동적 요소들과 함께 복합적으로 일어난다.7) 상황이란 다양한 권세들의 결합이며, 그 속에는 영적 권세들(powers)이 절대적 의미와 능력으로 인간의 의식세계를 지배한다.8) 이들은 인간에게 마치 신적 존재처럼 충성을 요구하며, 인간의 부패성과 결탁하여 신(神)이해의 과정에서 신관(神觀)의 변질과 왜곡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공동체 영성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적 요소를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상황은 개인 및 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을 해석하고 경험하는 삶의 자리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는 한국인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극도의 억압과 착취를 강요당한 시기이다. 여기에 일제는 군국주의9) 이데올로기를 통해 천조대신(天照大神)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했다. H. Berkhof에 따르면 군국주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 권세이다.10) 그에 항거할 경우 개인과 공동체의 모든 삶과 신앙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위협당하는 절대적 권세로서 당시 국가와 교회 위에 군림했다. 그 결과 그 앞에 무릎꿇은 인본주의 세력들이 교회 안팎에서 활개를 치고 맹위를 떨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사유와 이성으로는 만날 수 없는 분, 인간이 만든 교회조직과 제도 속에 계시지 않고 고통 속에 숨어 계신 분(Absconditus Deus)이었다. 바로 이 삶의 자리에서 루터가 말한 십자가의 신학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으로 경험하고 고백한 것이 고신영성이다. 고신영성은 신학적 사유와 이성에 의해 형성되고 고백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신앙과 삶이 근본적으로 부정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중심의 ‘영광의 신학’을 거부하고, 목숨을 건 자기부정을 통해 온 몸으로 인식하고 경험한 하나님을 순교적 삶으로 꽃피운 십자가의 영성이다.11)

공동체 영성을 형성하는 상황적 요소 중에는 민족성과 개인적 기질도 포함된다. 이 요소 역시 하나님을 해석하는 삶의 자리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순교적 영성이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산물임이 분명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이 한국인에게 부여하신 지조와 절개라는 민족성과 기질이라는 일반은총적 요소도 개입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의(大義)를 위해서는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지조와 어떤 고난과 유혹 앞에도 자기의 신념에 어긋난 일이 있으면, 왕이나 누구에게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절개가 선조들의 신앙과 삶 속에서 성령의 역사로 열매 맺고 꽃피운 것이 고신영성이다. 이 점에서 고신영성은 초기 기독교와 종교개혁 시대의 영성의 맥을 잇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적 개혁주의 영성, 십자가의 영성이라 할 수 있다.

 

3. 고신영성의 특징

본 장에서는 고신영성에 나타난 특징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하나님 인식의 방법, 영성이 지향하는 방향과 범위 그리고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며, 이후 이러한 특징들이 개혁주의 신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평가할 것이다.

 1) 말씀과 기도중심의 체험적 영성

하나님 인식의 방법에 있어서 고신영성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체험적 성격이다. 고신영성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말씀과 기도에 목숨을 건 신앙인들이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 이 두 가지를 통해 하나님 부재의 상황 속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깊은 임재를 체험했다. 한상동은 “신앙의 3계단”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세 가지를 강조한다.12) 첫째, 인간의 지식과 사고방식으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셋째, 기도할 때 신령한 눈이 밝아진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러질 때 심령의 변화를 받게 되는 것인즉, 힘써 말씀을 읽고 들으며,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인생은 자신의 지식, 사고방식, 사색만으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성의 체험적 특징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나타난 성령의 사역과 맥을 같이 하고 있는데 해방 후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남한에서 일어난 고신영성 운동에도 동일한 특징들이 나타난다. 부흥사경회의 형식으로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열정이 고신영성 운동에 지속되었고, 죄고백과 성령충만을 위한 기도회 역시 부흥사경회의 중요한 요소였다. 주목할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성령의 임재체험이다. 성령의 역사로 말씀에 대한 깨달음은 기쁨, 평안, 감격, 감사 등의 정서적 체험을 수반하였다. 기도 역시 일방적 간구로 끝나지 않고 성령의 은혜를 정서적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형태가 보편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많은 경우 죄에 대한 애통과 함께 눈물이 수반되었다.13)

 2) 자기부정의 영성과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

하나님 인식의 방법의 측면에서 고신영성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부정이다. 죄로 부패한 자기중심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영성이며,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도 부정하고 포기한 영성이다. 여기서 자기부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긍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극한상황 앞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한 온전한 순종과 절대충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상동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신앙세계는 절대 순종”이라고 역설하고 있다.14) 자기부정을 통한 절대순종과 충성은 주남선 목사의 지사충성(至死忠誠)의 영성에서 생생하게 나타난다.15) 지사충성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뜻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지사충성의 영성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 손양원 목사의 순교에서도 나타난다. 6. 25전쟁이 발발했을 때 피난을 가지 않고 성도들을 지키다가 공산당들이 쳐들어오기 전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내용의 요한계시록 2장 10절 설교를 한 후, 피신하지 않고 있다가 공산당들에게 붙들려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자기부정과 그리스도께 대한 충성은 세상가치의 중심에 서기를 포기하고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해 부요 대신 가난을, 강함 대신 약함을, 넓은 길 대신 좁은 길을 기꺼이 선택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상동 목사는 1952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고신교회가 축출되었을 때, 90% 이상의 교인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목회하던 초량교회에서 빈손 들고 나와 그들과 함께 삼일교회를 개척하였다.

 3) 주님과의 신비적 친교의 영성

고신영성은 주님과의 친교에 있어서 신비적 차원의 깊이를 보여준다. 초창기 고신의 지도적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신비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깊은 차원의 친교를 경험했다. 이러한 체험은 한상동의 여주동행(與主同行)의 영성에서 잘 나타난다. 한상동은 자신이 신비주의는 배격하지만 신앙의 세계에 신비가 있다는 말을 종종 했다.16) 그는 평소 깊은 기도와 묵상 가운데서 살았으며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깊고 충만한 임재의식 속에서 주님과 동행했다. 신사참배 반대로 옥중에서 극심한 고문에 시달리며 죽음의 문턱에서 그가 경험한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친교체험은 고신영성의 탁월성을 보여준다.

1940년 7월 3일이었다. 나는 경남 도경찰부(道警察部) 유치장에 구검이 되어 인생으로서는 차마 견디지 못할 어려움을 당하였다. 나는 그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나의 전 생명을 맡기었다........ 형사는 물론 나의 숨이 끊어지도록 어려움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을 향하여 다른 세계에서 주님과 교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나의 얼굴은 태연하였다. 평 화의 세계를 참으로 맛보았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나는 그때 맛보았다. 그 사랑은 샘 솟 듯하였다. 나는 갖은 어려움을 당하며 나의 몸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었다. 그때 주님께로부 터 오는 한없는 그 사랑, 아- 나는 너무 감격에 넘쳐서 울었다.17)

이 영성이 바로 Calvin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것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한 것이며, 영적인 경이에 속한다고 표현한 주님과의 영적 교제의 체험적 깊이의 차원이다.18) 여기서 한상동이 체험하고 있는 영성은 오늘날 소위 관상기도(觀想祈禱)라는 이름으로 추구되는 현실도피적, 신비주의적 영성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여기서 경험되는 신비는 극한 고난상황 한 가운데서 자기를 부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려는 실존적 투쟁으로서 주님과의 깊은 친교의 신비적 차원을 보여준다.19)

 4) 회개와 성화의 영성

고신영성이 지향하는 방향에 있어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회개와 신앙부흥을 통한 성화이다. 이것은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이라는 고려신학교의 교육이념 및 고신교회가 한국장로교 총회로부터 독립하면서 추구한 이념에 그대로 나타난다. 여기에는 당시 자유주의 신학의 대두와 신앙적으로 타락하고 변절된 한국교회의 정화와 쇄신을 향한 비전과 열망이 담겨있다. 고신영성 운동에 참여한 교회들은 시작부터 회개와 자숙을 강조하였고, 실제로 1950년대 초까지 회개를 신앙과 생활, 설교의 중요한 주제로 인식했다. 이상규에 의하면 고신영성을 추구했던 교회들은 '회개에 심취한 교회'였다.20) 회개는 해방 후부터 6.25 전후까지 교회생활에서 가장 중시된 가치였다.

고려신학교는 이 회개운동의 진원지였다. 1950년 4월 6.25 전쟁 발발 직전 당시 박윤선 고려신학교 교장이 인도했던 경건회에서 설교직후 한 사람씩 공개적으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기도회가 한 주간 내내 계속 되었고 그 회개운동은 전국교회로 확산되었다.21) 초창기 고려파 운동은 종종 회개운동 또는 진리운동으로 표현되었다. 고신영성을 사모하며 추구했던 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회개의 눈물이 있었다. 그들은 현실의 고통 때문에 울지 않았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울었고, 성결을 사모하여 자신의 죄 때문에 애통했고,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의 역사를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다.

고신[영성]의 역동성은 어두움의 세력에 대한 파괴력에서 나타나며 그 결과는 놀랍다. 죄에 대항하는 문제에 이르면 그들은 강하게 부딪치고 강하게 싸운다. 사죄의 제물이 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할 때 는 많은 청중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전하던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어떤 분은 호주머니 뒤에서 깨끗한 손수건을 꺼내어 돌아서서, 혹은 한복 소매 자락에서, 어떤 분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고, 어떤 분 은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감격해 하며 설교를 이어가는 장면은 초창기 고신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22)

회개를 통한 부흥체험은 주님의 계명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기 원하는 성화의 삶을 향한 열망으로 나타났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율법적인 경향으로 흐르기도 했지만, 당시 고신교회 신자들의 삶은 전반적으로 신앙고백이 같은 여타의 장로교회들과는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

 5) 교회쇄신을 지향한 공동체적 영성

고신영성은 두 가지 면에서 공동체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그 영성이 특정 개인이나 몇몇 소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영국의 청교도 운동처럼 집단적인 운동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영성이 지향하는 방향성이 회개를 통한 교회쇄신이라는 공동체적 성격을 티고 있다는 점이다. 고신영성에서 강조된 회개와 부흥의 초점은 개인이 아니라, 교회중심의 공동체 회복이었다. 한상동은 “현하(現下) 대한교회(大韓敎會)에”라는 글에서 당시 신사참배의 죄를 회개하지 않는 한국교회를 향해 경고하면서 “따라서 우리들은 시급히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쓰고 회개할지니라. 이는 여호와의 진노가 무서운 까닭이다”23)라고 역설하면서 당시 신사참배의 죄에 대한 회개를 개인적 차원으로 치부하는 다수파들의 입장을 반대하며 공적 차원의 회개를 요청하고 있다. 초창기 고신영성의 주된 관심은 당시 신사참배가결로 무너진 한국교회 재건이었기에 회개를 통한 교회쇄신의 비전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를 향했다.24)

 6) 저항과 투쟁의 영성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고신영성은 어떤 특징을 보여주는가? 고신영성 운동의 시발점이 일제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투쟁이었다는 것은 신앙적 투쟁의 일차 대상이 세속 국가와 시대정신이었음을 보여준다. 일제 강점기 고신영성을 주도했던 교회 지도자들은 모두 애국자였다.25) 그들은 목회자였지만 그들의 눈은 교회 내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를 향했다. 고신영성에서 저항과 투쟁의 극치는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一死覺悟)의 영성에서 나타난다.26) 그 영성은 그 시대의 영적권세에 맞서서 죽음으로 저항하는 영성이요, 불의로 고난받는 민족과 역사의 고통에 동참하는 영성이다. 뿐만 아니라, 정절을 잃고 배교하는 조국교회를 향해 애통하는 영성이요, 죄와 불의에 대해서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영성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지배한 영적 권세들과 피흘리며 싸워서 승리한 영성이다. 이점에서 고신영성은 개인의 회심과 교회내적 관심사에 주된 강조점이 있는 복음주의 영성과는 차별되는 개혁주의 영성이다.

 7)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디아코니아의 영성

고신영성이 신사참배에 대한 반대와 저항에 있어서는 일치하지만, 세상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는 이 운동에 참여한 개인마다 고유한 빛깔을 가지고 나타난다. 이 점에서 손양원의 영성은 특별한 면을 보인다. 그도 역시 신사참배 반대로 두 번의 옥고를 치렀지만, 나환자들로 구성된 애양원 교회 목회를 통해 나타난 그의 영성에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자기희생적 삶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공산분자에게 총살당한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10가지 넘치는 감사와 함께 그들을 죽인 원수까지도 용서하여 양자를 삼은 그의 모습은 십자가의 영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디아코니아로서의 고신영성은 6.25 전쟁직후 난민들과 병자들을 구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전영창에 의해 시작된 복음병원(현, 고신의료원) 사역과 고아들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조수옥의 복지사역27)에서 잘 나타난다.

 8) 하나님 영광을 지향하는 영성

하나님 영광은 고신영성이 지향하는 궁극적 방향이다. 초창기 고신의 지도자들의 사역과 삶 속에 하나님 영광은 언제 어디서나 등장하는 기본 명제였다. 한상동은 신사참배 반대의 명분까지도 하나님 영광에서 찾았다. 그는 신사참배 반대이유를 묻는 일제에게 신사참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에 반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28) 나아가 초창기 고신의 지도자들은 세상적인 명예나 자리를 결코 탐하지 않았고, 삶의 최고의 가치와 영광을 오직 그리스도에게서 찾았다.

 4. 고신교단 형성과 고신영성의 쇠락

지금까지 해방 전 신사참배 반대운동에서 시발되어 해방 후 고려신학교(1946) 설립과 함께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서 교회쇄신운동으로 전개되었던 소위 고려파 운동에 나타난 고신영성의 특징을 고찰하였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신영성은 해방 전 7년간(1938-1945)은 일제의 신사참배강요에 대한 반대운동 속에서 발현되었고, 해방 후 고려신학교 설립과 함께 고신교단이 분리 독립될 때까지 7년간(1945-1952)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참여한 한국장로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를 향한 교회쇄신 또는 교회재건 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1952년 9월 고신교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로부터 축출되어 독립하면서 고신영성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고신영성이 가능했던 삶의 자리(Sitz im Leben)가 전환된 것이다. 이전까지 전개된 쇄신운동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내(內) 교권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를 향한 투쟁으로서의 진리운동이었다. 변절된 다수파를 향한 경건한 소수파의 영성운동이었다. 그러나 장로회 총회로부터 소수파가 단절됨으로써 진리운동으로서의 고신영성은 투쟁의 대상을 상실하게 되었고, 스스로 쇄신과 개혁의 대상이 되면서 그 운동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 이후 진리운동으로서의 고신영성의 본류는 단절되고 고신교회내 지류의 형태로 주로 개인적 차원에 머물게 된다.29) 아이러니하게도 고신교단 분리 독립과 함께 고신영성은 이때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30) 교단설립 이후 채 10년이 못되어 고신교회는 기성 교회를 답습해 가기 시작했고, 고신교회 내에서 고신영성은 변질과 타락을 경험하게 된다. 본 장에서는 영성의 세 번째 차원인 실천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어 고신교단 설립 이후 고신영성의 쇠락과 붕괴의 현상을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1) 우월주의와 배타성

고신교회의 분리 독립은 본래 의도와는 달리 그들의 삶의 자리를 교권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전시켰고, 이는 곧 자기부정의 자리에서 자기긍정의 자리로 이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초창기 고신영성은 다수의 교권세력에 의해 공격받고 무시당하는 자기부정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살려는 청교도적 열심으로 표출되었으나, 이후 그 열심이 율법적인 자기의(義)로 변하면서 ‘우리만이 진리’라는 우월주의, 영적 엘리트주의에 빠지게 되었다.31) 한국교회 전체를 향한 정화와 쇄신의 열정은 사라지고, 과거 신사참배 반대투쟁이 진리파수라는 자신들의 신앙적 우월성 과시를 위한 독점적 전유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런 태도는 이후 관용과 포용정신의 부재로 이어져 고신교회내 많은 인물들이 교단을 떠나고, 지역주의적 배타성에 편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 윤리성의 상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듯이(마7:16) 바른 영성은 필연적으로 바른 윤리적 삶을 수반한다. 그러므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윤리적 삶은 영성의 진정성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다. 총회로부터 고신교회의 분리 독립(1952)과 총신과의 합동 환원과정에서 전개된 교세확장을 위한 교회당 쟁탈전, 여기서 연유된 불신법정 소송, 성도간 내분과 대립,32) 1960년대의 고려신학교를 둘러싼 분쟁과 사조이사 사건, 복음병원을 둘러싼 이권 대립, 편법과 문서 위조33) 등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 고신영성의 부패와 타락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3) 공동체성의 붕괴

1970년대에 이르러 법정소송에 대한 시비로 고신교회는 소위 고소파와 반고소파로 분리된다.34) 이후 재결합이 되었지만, 이 사건은 1960년대 초 총신과의 합동 및 환원사건과 함께 고신교회에 교회적 일치와 공동체성의 붕괴를 스스로 초래한 중대한 사건이다. 초창기 회개를 통해 공동체가 진리 안에서 서로 연합하고 하나가 되기를 소원했던 모습과 정반대로 이 사건은 피차 세속법을 앞세워 공적인 일을 처리함으로써 고신교회에 스스로 분열을 가져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교회 내부적으로 순결이 무너지고 교회의 거룩성이 심대한 훼손을 겪게 되었다.

 4) 세속주의 우상들에 대한 맹종

앞서 고신영성이 당시 세속 국가와 시대정신에 저항하는 영성임을 살펴보았다. 올바른 신학적 성찰이 수반되었다면 1970년대와 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고신교회가 정부를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와 함께 저항적 행동을 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다.35) 뿐만 아니라, 1970년대와 8-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사회에 풍미한 성장 이데올로기와 번영 이데올로기라는 보이지 않는 우상이 영적 권세로 우리 앞에 대두되었지만, 고신교회는 물론 고신대학교와 복음병원은 세속주의, 맘몬주의와 영합하며 그 우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가운데 2002년도 복음병원 부도사태와 이로 인해 4년 세월을 관선이사 체제라는 치욕스런 고신의 ‘바벨론 유수(幽囚)’를 경험해야만 했다.36) 이후 고신교회는 영적, 도덕적으로 여타의 다른 교단 교회들과의 차별성을 상실했고 오늘날은 교권주의라는 또 다른 우상이 군림하며 교회지도자들로부터 경배받고 있다.

 5. 개혁주의 신학과 고신영성

본 장에서는 3장에 나타난 고신영성의 특징들이 개혁주의 신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Calvin의 견해를 중심으로 간략히 고찰하고자 한다.

 1)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unio mystica cum Christo)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는 Calvin신학의 중심이자 구원론의 기초인 동시에 영성의 신학적 기초가 된다.37) Calvin에 의하면 “성령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주는 띠”38)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우리와 그가 하나가 된다. 머리와 지체가 하나로 결합되듯 그리스도가 우리의 것이 되고 그가 받은 선물을 우리도 나눠 가지게 된다.39) 그 은혜를 받는 방법이 기도이며, 기도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와 신비한 교제에 참여한다. 이러한 연합을 가리켜 Calvin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넘는 신비적인 것이며, 영적인 경이에 속한다고 말한다.40) 또한 “믿음의 영속적인 행사”41)로서의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 즉 그의 명령과 약속에 기초해야 함을 Calvin은 강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을 통해서 기도의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선행해야 하고 동기를 제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는 그 방향과 세부적인 사항에서 바로 그 말씀에 의하여 지배되고 억제되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42)

영성의 신학적 기초 및 하나님 인식 방법에 있어서 고신영성은 Calvin의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와 기도론에 분명하게 기초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절대적 헌신과 충성 그리고 이를 향한 내적 조건으로서 그리스도와의 친교(communion)의 체험적 성격은 개혁주의 신학 중에서도 신앙의 주관적 체험을 중시하지 않고 말씀의 객관성을 중시하는 유럽 대륙의 개혁주의와 달리 체험을 중시한 영국의 청교도 영성과 맥을 같이 한다.43)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교회가 처한 삶의 자리인 역사적 상황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청교도들이 당시 영국사회의 불안과 불확실성 속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과 박해상황과 동일하게 일제 강점기에 일사각오(一死覺悟)의 믿음의 투쟁이 요구되었던 사회적, 종교적 한계상황은 신자들에게 내적 위로와 소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환경이었다. 이러한 삶의 정황 때문에 하나님 인식이 정서적 체험적 형태로 강조되어 나타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한국인으로서의 고유한 민족성과 심성이라는 토착적 요소도 고려되어야 한다. 동양인인 한국인은 서구인에 비해 합리성 보다는 감성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더 발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는 약소국으로서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들부터의 오랜 고난을 통해 형성된 고유한 민족적 정서인 한(恨)의 정서가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이러한 요소 역시 고난과 투쟁의 상황 속에서 형성된 고신영성의 체험적 성격에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인으로 보아야 한다.

 2) 하나님 인식에 있어서 객관과 주관의 균형

바른 믿음이 전제된 바른 영성에는 ‘신앙의 객관적 측면’(fides quae creditur)과 ‘신앙의 주관적 측면’(fides qua creditur)이라는 두 요소가 필수적으로 상호 연관되며 성령의 역동적 역사 속에서 이 두 가지가 어느 쪽에 치우치느냐에 따라 영성의 빛깔이 결정된다. 전자에 치우칠 때 이성적, 객관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고, 후자에 치우칠 때 정서적, 주관주의적 경향을 띠게 된다. Calvin의 영성에는 객관과 주관, 말씀과 성령, 두 가지가 인식론적으로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다.44) 말씀을 성령으로부터, 성령을 말씀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말씀이 인간의 가슴에 와 닿게 된다. 이 점에서 Calvin에게 하나님 지식은 인격적이고 체험적이다. 신사참배 반대운동에서 나타난 고신영성의 체험적 특징이 단지 개인적 내면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리스도를 향한 일사각오의 제자도의 맥락 속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체험 속에는 Calvin이 강조하는 있는 바, 주관과 객관, 성령과 말씀이 상호 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흥집회에서 나타난 회개에 수반된 정서적 특징 역시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체험이 단지 개인적 감정적 체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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