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06-30 17:20
휄체어의 지휘자 차인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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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고신관…
조회 : 5,056  


지난 4월 29일(주일) 스와니소재 갈보리장로교회당(최진묵 목사)에서는 차인홍 교수초청 연주회가 열렸다. 4월 한달동안 매주일 영상연주회를 진행해왔던 동 교회는 마지막 순서로 오하이주 라이트주립대학오케스트라 지휘자 겸 부교수인 바이얼리니스트 차인홍 교수를 초청했는데, 예배당을 가득 메운 회중들에게 기대에 부응하는 감동의 연주를 들려 주었다. 차 교수는 이날 엘가의 ‘사랑의 인사’, 마스네의 ‘명상곡’, 찬송가‘내 주여 뜻대로’등 클래식곡과 찬양곡등 6곡을 연주했으며 장애를 가진 자신이 연주자가 되고 미국대학의 교수가 되는 과정을 간증하여 감동을 더했다. 인터뷰에 응해준 차교수와 나눈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옮긴다.



소아마비로 인해 걷지못하는 육체적인 장애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차인홍 교수는 어린 시절을 보낸 재활원이 기독교 재단이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또한 바이올린을 접하게 되면서 시작된 그의 음악 인생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오하이오에 있는 라이트 주립대학(Wright State University)의 교수로 변화되게 하였다. 현재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지휘자로 활동하기까지 그의 음악과 삶을 통해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 차인홍이 바이올린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재활원에서였다. 당시 대전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유명했던 강민자 선생은 재활원 앞을 지나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재활원을 방문해 이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차 교수와 바이올린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6남매 중 막내인 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재활원에서 지내야 했고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던 저에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음악은 아픔을 이길 수 있는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아침에 시작한 바이올린 연습은 저녁이 되어 어두워질 때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그렇게 바이올린을 시작한 1년 후, 충청남도 음악 콩쿠르에 나가 1위를 하면서 어린 차인홍의 이름은 주위에 슬슬 알려지기 시작했다. 14살이 되던 해에는 협연자로 설만큼 연주 실력을 인정을 받았다.
스물네살이 되던 해에 검정고시를 통하여 중학교 과정을 마쳤고, 그다음 해에 는 고등학교 과정도 수료했다. 스물 여섯살이 되던 해에는 오하이오 주의 신시네티 음악대학으로 유학 길에 오르게 된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 장애를 가지고 휄체어 타는게 무슨 큰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 당시에 장애인은 학교를 다닐 수 조차 없었고, 바이올린 공부도 사실 부잣집에서나 한다고 생각했었던 저에게 유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인복(人福)이 많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런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박사 학위를 마친 후 더욱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사우스 케롤라이나 대학에서 지휘로 박사학위를 마친 후, 미국의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기 위해 여러 곳의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나 그때마다 느낀 것은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하는 마음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실력만 느끼게 되어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인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가게 되었다.

“미국에서 졸업 후 1년동안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는데 정말 할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음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다른 기술을 배워볼까, 신학대학에 가서 음악목사가 될까, 정말 많은 생각을 하다가 1년동안 새벽기도를 하자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오하이오주 라이트 주립대학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교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죠. 모집요강에 지휘와 현악4중주 경험이 있어야 했는데 그것은 그동안 해온 일이어서 저를 위한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다 하나님의 은혜였던거죠.”

지원을 한 후 여러심사를 거쳐 최종 3명이 후보가 될 때 까지도 정작 차교수 자신은 자신이 교수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마지막 심사인 3박4일 동안 오케스트라 리허설, 독주회 등 철저한 테스트를 거쳐 마침내 차 교수는 라이트 주립대학의 조교수로 발탁되었다.

“저 보다 바이올린 시작이 휠씬 뛰어난 사람도 많았고, 지휘를 잘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제가 83명중에 최종적으로 선발이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다른 할말이 없습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로 부터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장애인들을 위한 재단설립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의 음악속에 담겨 있는 삶과 신앙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기대해 본다.


<대담·정리 데이빗 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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