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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재미총회 40년] 12. 재미총회 첫 선교사 김진경 박사


12. 재미총회 첫 선교사 김진경 박사

                                                                                      나삼진 목사(Evangelia University 교수)

재미총노회가 조직된 2년 후 제3회(1988) 총노회에서 재미총회 선교역사에서 특별한 결정이 있었다. 재미총회의 첫 선교사로 김진경 박사를 공산권 지역에 파송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중국을 십여 차례 드나들며 중국 선교를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다. 김진경 박사는 총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되면서, ‘공산권(중국, 북한) 선교 특강’으로 중국 선교의 비전과 앞으로의 전망을 나누었다.

김진경 박사는 마산문창교회 출신으로 숭실대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영국 크립톤대학에 유학중, 죠지 뮬러의 고아원을 자주 방문하면서 그 역사와 정신을 체득하였고, 스위스의 라브리 공동체를 드나들며 프란시스 쉐퍼와 깊이 교류하였다. 그는 유학을 하면서 단순히 학문만 아니라 이런 교류를 통해 기독교 사역에 깊은 통찰력을 얻었다. 필자는 부산남교회 학생 시절과 고교 SFC 시절에 여러 차례 그의 특강을 들었고, 그의 집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그는 사람을 설득하는데, 특히 청년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탁월한 은사를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1986년 중국사회과학원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청년들이 꿈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생애를 드려 중국 선교에 헌신하기로 했다. 그는 재미총회에서 선교사로 파송받기 직전이었던 1987년 중국 연변(延邊)에 본격 진출, 연변과학기술대학이 설립되던 1992년까지 현지를 100여 차례 왕래하였다.

그는 연길시 정부와 ‘대학 설립 합동서’를 체결하고 1990년에 미국에 이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였다. 연변과학기술대학(YUST) 설립 준비가 구체화되면서 설립이사장 곽선희 목사와 설립학장 김진경 박사 이름으로 공문을 보내면서 초기에 유수한 교회들과 기업인들이 참여해 초기에 9억 원 이상을 모금하였다. 1990년에 곽선희, 옥한흠, 김진경, 최순영, 홍정길 등 목회자들과 기독실업인들이 이사로 참여하는 동북아재단이 한국 정부의 법인 인가를 받았다.

당시 중국이 외국인 투자가 절실하던 시절에 한국과 중국의 합작으로 중국 선교의 비전을 엮어 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이었다. 대학을 운영하려면 많은 교수진을 필요로 하지만, 다수 교수들은 미국과 한국에서 은퇴한 이들 중에 선교에 비전을 가진 이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대학 재정 운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연변과학기술대학 개교 10주년(2005)에는 “13개국에서 온 300명의 교수들이 100명의 현지 봉사자들, 2천 명에 가까운 학생들과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했다. 이미 1,500명의 졸업생들이 중국 전역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여, 개교 10년 만에 중국에서 1등급 대학으로 성장하였다.

연변과기대 개교에 고현교회, 대신동교회, 동래제일교회, 부암제일교회, 서울영동교회, 서울남교회, 세계로교회. 시온성교회, 울산교회, 잠실중앙교회 등 한국 고신총회와 뉴저지제일한인교회, 휴스턴한빛교회, 산호세한인교회 등 재미총회, 고신권사찬양단과 학생신앙운동 등 고신교회의 기관, 한명동 목사를 비롯한 고신교회 지도자들이 동참하였다. 연변과학기술대학은 202-년에 30년 계약기간이 만료되면서 폐쇄되고 지금은 연변대학에 편입되었다.

김진경 박사는 재미총회의 순회선교사로 파송받았지만, 그의 꿈과 비전은 재미총회로 제한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들과 기독실업인들과 동역하면서 재미총회의 관심이 약해졌던 측면이 있고,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노력없이 선교사 명부에서 제외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진경 박사는 연변과학기술대학 개교와 성공적인 운영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과학기술 개발이 절실하던 북한 정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단의 방문을 받고 평양과학기술대학을 설립을 요청받았다. 그는 한때 간첩 혐의로 42일간 억류되었다가 추방되기도 했지만, 이후 북한 정부의 초청을 받아 2010년 북한에서의 첫 사립대학으로 평양과학기술대학을 설립해 사역하고 있다.

사진: 연변과학기술대학 전경, 김진경 박사 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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