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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 이야기

[재미총회 40년] 13. 재미총회 초기 모습과 총회 승격


13. 재미총회 초기 모습과 총회 승격

                                                                                              나삼진 목사(Evangelia University 교수)

미국은 광활한 대륙이다. 유럽이면 거의 국가 수준의 크고 작은 주가 50개이고, 뉴욕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 비행기로 5시간이 걸린다. 하와이주를 제외하고라도 뉴욕에서 엘커리지까지 동서로 시차가 네 시간이나 난다. KTX를 타고 하룻만에 전국을 나다닐 수 있는 일일생활권 한국과는 여러모로 차이가 많다.

1985년 11월에 재미한인예수교장로회 총노회가 조직되었지만, 총회가 전국교회를 관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4년 동안 매년 총노회를 한 해 한 차례 모일 뿐, 재정적인 여건으로 지도자들이 교회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재미총노회가 조직되면서 고신교회에 뿌리를 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였고, 미국의 주류신학교들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거나,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을 온 목회자들이 재미총회에서 안수를 받기 시작했다. 총노회가 창립될 때 13명이 참석하였는데, 제2회 총노회에서는 23명, 제3회 총노회에서는 29명 등이 참석하여 그 수가 꾸준히 증가하였다.

제2회 총노회에서는 부서 조직도 갖추어 행정부, 교육부, 선교부, 고시부, 재정부를 상비부로 두었고, 기획위원회, 섭외위원회, 신학교 설립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설립위원회에서는 재미고려신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설립책임자 이근삼 박사를 선정하였고, 장소와 시기는 이근삼 박사와 임원회에 맡기기로 하였다.

제3회 총회에서는 SFC와 관련된 몇 가지 결의사항이 눈길을 끈다. 1) 영문 이름을 SFC in America로, 2) 총회산하 교회에 SFC 조직을 권장하기로, 3) 1988년에 동부 남미지역에 SFC동문회 조직과 대학 SFC조직을 갖도록, 4) SFC 회칙은 서부지역의 회칙을 사용하고, SFC강령은 동부지역의 것으로 사용하며, 5) SFC 뱃지를 제작하도록 하며, 6) 서부지역에서 갖는 SFC수양회는 3년에 1회씩 전 미국의 모임으로 하고, 서부지역에서 갖는 동문회 수련회는 매년 갖도록 한다고 결의하였다. 당시 재미SFC에서 동부지역은 박재영, 김만우 목사 등 지도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고, 서부지역은 한국 SFC출신의 동문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설립 초기 한국총회는 재미총회 조직기의 어려운 여건을 고려하여 재미총회를 위해 200만 원을 보조하였고, 제3회 총회에서는 감사장을 보내도록 결의하였다.

총노회 조직 후 꾸준히 교회와 목회자들이 증가하면서 제4회(1988) 총회가 포코노수양관에서 모였을 때 목사 23명, 장로 3명 등 26명이 참석하였다. 제4회 총회에서는 총회장 김만우, 부총회장 하청조, 정필흠, 서기 명병헌, 회록서기 송진섭, 부회록서기 구자경 목사, 회계 신용호, 부회계 최용표 장로가 선임되었다. 총노회에서 동부노회와 서부노회로 분립하기로 결의하고, 그 자리에서 두 노회가 조직되었고, 총노회는 총회로 승격하는 감격을 누렸다.

동부노회는 15인이 참석하였는데, 임원으로 회장 임종수, 서기 조봉환, 회계 신용효 장로를 선임하였다. 신설된 서부노회는 24명이 참석하였는데, 임원은 회장 신현국, 서기 김정곤, 회계 전태진 장로 등이었다. 이 총회에 특수지역으로 분류된 캐나다와 남미지역에서도 다섯 명이 참석하였다.

제4회 총회에는 고려신학대학원장을 끝으로 정년 은퇴하고 미국에서 생활하던 홍반식 박사, 고신대학장을 마치고 미국 열린문장로교회를 잠시 시무하던 김병원 박사도 함께 자리하였다. 총회에는 한국총회장 박현진 목사, 고신대총장 이근삼 박사, 임종만 목사가 사절단으로 방문하였고, 유학중이던 현유광 목사도 참석하였다. 한국총회에 사절단으로 갔던 총회장 전재린 목사가 방문 결과를 보고하였다. 재미총회는 목회자 신분증을 발급하기로 하였고, 총회 기간에 조봉환 목사가 ‘목회 간증’ 특강을 하였다.

제4회 총회에서는 목회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총회에서는 신학교설립위원회를 조직하고 김만우, 박재영, 신현국, 전재린, 김용출, 배성학, 김진경, 신용호, 김상철 장로에게 맡겨 처리하기로 하였다.

위원회는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장을 지내고 은퇴 후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홍반식 박사를 학장 서리로 모시기로 하였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설립된 지 3년이 되는 신생 재미총회는 아직 어리지만 이렇게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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